금감원 특사경에 힘실어 준 대통령…‘실세 원장’ 인식 굳어져

2026-01-28 13:00:01 게재

금융위와 ‘인지수사권 부여’ 협의 중에 대통령 공개 지시

금감원, 수사심의위 설치해 통제 … 주가조작 수사 빨라질 듯

반대해온 금융위 입장 무색해져 … 두 기관 관계 급속히 냉각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라고 공개 지시했다. 2015년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사건을 수사할 특사경이 출범한 이후 금감원이 지속적으로 인지수사권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이재명정부에서 가능해졌다.

그동안 금융위원회가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며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금감원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이찬진 금감원장이 ‘실세 원장’이라는 인식이 더 굳어지게 됐다.

28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시한 사항이어서 빨리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 않고 특사경집무규칙을 개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인지수사권 부여에 속도를 내겠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무회의에서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인지수사권 부여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인지수사권은 신고나 고발이 없이 수사기관이 스스로 범죄 혐의를 인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수사기관은 인지수사권을 갖고 있지만 금감원 특사경에 대해서만 예외를 적용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금감원 특사경이 인지를 못하게 해놨다고 하더라. 인지를 못하게 하면 어쩌나”며 “인지에 대해서만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건 고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이 필요한 이유는 신속한 수사를 위해서다. 범죄혐의를 인지하면 곧바로 수사 착수를 해야 하는데, 금감원은 조사 중이거나 조사를 끝낸 사건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보내고 증선위 판단에 따라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금감원에서 조사를 하고 제재 프로세스를 거치면 대략 11주가 날아간다”며 “수사로 즉시 전환돼야 할 이슈가 많은데 3개월을 허송세월하다 보면, 증거도 인멸되고 흩어져버리는 상황”이라고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주가조작사범의 패가망신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수사하는 금감원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공무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금융위 특사경에는 인지수사권이 있고 금감원 특사경에는 인지수사권이 없다는 점은 제도의 실효성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쟁점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현재 특사경 도입이 추진 중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인지수사권이 부여되는 상황에서 금감원만 제외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률적으로 똑같이 하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외부 인사가 포함된 수사심의위원회를 두고 무리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내부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안을 금융위에 제시했다. 두 기관은 조만간 만나 결론을 낼 예정이다. 인지수사권이 부여되면 주가조작사범 등에 대한 금감원의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진다.

2023년 발생한 SG증권발 주가폭락 사건으로 불거진 주가조작범죄는 금감원 인지수사권이 없어 늑장대응 논란이 불거진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금감원에 인지수사권이 없어서 SG사태 관련 제보는 금융위 특사경으로 갔다. 주가폭락 사태 2주전 제보가 이뤄졌지만 두 기관의 공조는 없었고 작전세력에 대한 압수수색은 주가폭락 사태 이후 진행됐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특사경 증원과 인지수사권 부여 문제를 놓고 그동안 협의를 진행해왔다. 특사경을 도입한 10년 전부터 두 기관이 인지수사권 문제로 대립 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특히 대통령 발언으로 금감원 일부 업무에 특사경 도입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제기되면서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위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외부 발언을 조심하고 내부에도 입단속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조용히 금융위와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나서서 금감원 손을 들어주면서 ‘실세 원장’이라는 프레임이 한층 공고해졌다.

금감원장과의 친분이 아니라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개선함으로써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지만 두 기관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실세 원장’이라는 무게감이 더 커졌다.

상위 감독·관리 기관인 금융위와 집행기관인 금감원의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게 됐다. 업무협의와 관련해 금융위가 느낄 부담감은 더 커졌고 이 원장도 행보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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