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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은 ‘전략적 자율성’으로 답하라

2026-01-29 13:00:03 게재

이제는 잊힌 일이지만 몇달 전 이재명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한국은 국내적으로 내란사태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사면초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안보의 핵심인 동맹국 미국이 한국을 고율의 관세로 압박했다. 이제는 동맹이 아니라 경쟁국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과는 사드 배치로 악화된 관계가 코로나19로 고착화되고 윤석열정부의 자해적 외교로 파국을 맞이했다. 일본과는 뿌리 깊은 과거사 문제가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이재명정부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존재였다. 적대적 2국가론을 주장하는 북한은 아예 한국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전형인 셈이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의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 그리고 국가안보실과 외교라인의 냉철한 대응에 힘입어 이러한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역설적으로 이재명정부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외교다. 이러한 성공의 바탕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한국인의 저력이 있다.

외교 성과 지지율 떠받치지만 과제는 산적

그러나 한국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올리겠다는 트럼프의 엄포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환경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 23일 발표된 미국의 국가방위전략(NDS)은 한반도에서 동맹국의 책임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미국 안보환경의 핵심으로 ‘동시성 문제’(simultaneity problem)를 규정했다.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지역 내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주변국의 갈등에 연루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 중국을 겨냥한 것을 알면서 어렵게 회복한 한중관계를 파탄내는 길을 선택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은 우리 외교현실에 기반한 실용적 전략임에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미중전략경쟁의 중심이 규범 기술 경제 등으로 옮겨오면서 자칫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이 유연한 대응보다는 불확실성의 비용과 동맹의 억지력 약화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변 상황에 대해 수동적으로 회피하는 소극적인 방식이라는 점이다.

전략적 자율성은 주변국의 외교전략으로부터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개념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동맹인 미국과 안보상의 협력과 억지력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이 ‘어디에,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관여할지를 한국의 국익 기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여지와 역량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맹을 방기하거나 단순히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동맹의 틀 안에서 우리 나름의 능동적 결정권과 협상력, 실행력 등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동맹의 현대화나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은 반드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국군이 주도하는 연합방위태세가 갖춰져야 한다. 한국군 주도 연합방위태세의 핵심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군이 한반도에서 연합전력의 주축을 맡는 것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은 것이다.

아울러 미군의 부담을 줄여줄 핵추진잠수함 같은 전략자산을 운용할 수 있으려면 한미원자력협정도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사실 이 둘은 세계 5대 군사강국으로서 대한민국 국격의 회복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 넘어 전략적 자율성으로

이재명정부는 오랜만에 미국 중국 일본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안보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오직 국익에만 기초해서 실용적인 외교를 펼치겠다는 전략이 주효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되 얻을 수 있는 것이 왔을 때 놓치지 않는 전략적 판단이 우리 외교의 전략적 공간을 넓혀줄 것이다.

정한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