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 부실 뒤 책임경영 꺼낸 SK증권

2026-01-30 13:00:06 게재

무궁화신탁 사태 이후 이사회 개편…사후 대응 논란

SK증권이 무궁화신탁 오창석 회장에게 집행한 대규모 주식담보대출이 부실화되자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을 내세우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자기자본의 23%에 달하는 1500억원 규모 부실이 발생한 뒤에야 내놓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SK증권은 지난 29일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사외이사 비중을 57%까지 확대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과거 경영진의 결정을 사후 승인하던 이사회를 위험 관리의 핵심 기구로 격상하고 감사실 등을 본부로 승격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는 내부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가 된 1500억원대 대출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집행됐다. 리스크관리집행위원회라는 내부 협의체 판단만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고, 이사회는 사실상 관여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으로는 ‘지배구조 유지용 조건부 교환 거래’ 의혹이 거론된다. SK증권이 무궁화신탁 오 회장에게 거액을 빌려준 직후 무궁화신탁은 SK증권 대주주인 J&W파트너스 펀드에 100억원을 출자했다. 오 회장에 대한 1000억원대 주식담보대출 직후 이뤄진 거래다. 업계에서는 이런 자금 흐름이 단순한 금융 거래를 넘어 대주주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작동했다면 대주주와 얽힌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사전에 걸러냈어야 했다”며 “이제 와서 의장과 대표를 분리한다고 해도 훼손된 내부통제에 대한 신뢰를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실을 수습하는 방식 역시 논란이다. SK증권은 무궁화신탁 대출 회수를 위해 측근 사모펀드(PEF)인 로드인베스트먼트를 앞세워 무궁화신탁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500억원을 출자할 계획도 세웠다. 이미 손실이 발생한 대상에 다시 회삿돈을 투입하는 셈이다.

무궁화신탁의 우발채무가 5000억원대에 이르는 상황에서 추가 출자가 오히려 손실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을 정리하기보다는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SK증권은 이번 조직 개편이 책임경영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구조 개편보다 먼저 부실 발생 과정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핵심은 신뢰”라며 “사후 대응이 책임경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부실 대출이 어떻게 결정됐고 왜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문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재 기자 hj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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