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8만달러 붕괴…‘수요 공백’에 속수무책
시장 유동성 FTX 이후 최악
AI·금 열풍에 투자금 이탈
지난해 10월 급락이 ‘한 방’의 충격이었다면, 이번 흐름은 시장에 더 위협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은 매수세와 추세, 그리고 시장의 믿음 자체가 사라진 ‘수요 공백’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촉발 요인이나 연쇄 청산 같은 시스템 충격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요 둔화와 유동성 위축, 그리고 비트코인이 다른 자산군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최근 지정학적 긴장, 달러 약세, 위험자산 랠리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금과 은 가격이 크게 출렁일 때도 암호화폐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1월 비트코인은 약 11% 하락하며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2017년 ICO 광풍 뒤 2018년 급락장에서 나타난 내림세 이래 가장 긴 월간 연속 하락이다. 1일 오전 11시 20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7만7190달러를 기록했다.
가격 하락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온라인 분위기의 변화다. ‘달까지 간다(To the moon)’는 식의 밈과 과시가 난무하던 시장에서, 이번 하락은 ‘저가 매수’ 열기나 응원 없이 비교적 조용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낙관론의 연료가 바닥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의 친암호화폐 정책과 기관투자 확대라는 호재 속에서 나타났다. 시장에선 이미 이런 기대감이 가격에 선반영됐고, 이후 탄력이 꺾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물 ETF(상장지수펀드)에서는 자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어 주류 투자자들의 확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구조적 취약성도 드러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이코에 따르면, 대규모 거래를 흡수할 수 있는 비트코인 매수·매도 물량은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30% 이상 낮아졌다. 유동성이 이 정도로 떨어진 건 2022년 FTX 붕괴 이후 처음이다. 더 높은 가격에 매수한 투자자들이 손실 구간에 갇혀 있고, 암호화폐 관련 주식들의 버블이 꺼지면서 대형 기관들도 매입을 줄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회복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2021년 정점 이후 회복에 28개월, 2017년 ICO 붐 이후엔 거의 3년이 걸렸다. 카이코의 로랑 프로슨 분석가는 현재 가격 주기 위치를 약 25% 저점으로 보면서, 의미 있는 회복까지 6~9개월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2017~2019년 ‘암호화폐 겨울’ 당시 거래량이 60~70% 급감했던 사례를 들며, 최악의 낙폭은 보통 사이클의 50% 지점에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자금 경쟁’을 지목한다. 페로 BTC 변동성 펀드 창립자 리처드 호지스는 대형 보유자들에게 “1000일 동안은 사상 최고가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AI 관련 주식과 귀금속 강세가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며, “비트코인은 3년 전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