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한국농아인협회 고위 간부 압수수색
채용 미끼 성폭행 혐의
예산 유용 수사도 착수
경찰이 성폭력 의혹을 받는 한국농아인협회 고위 간부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지난달 29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국농아인협회 본사 사무실과 정 모 이사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영장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이사는 중앙수어통역센터 중앙지원본부장 지위를 이용해 수어통역사 채용을 미끼로 청각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관련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를 진행해 왔으며 압수수색을 통해 피해자의 인사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채용과 퇴직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며 혐의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다.
정 이사는 해당 의혹이 불거진 뒤 인사 조처를 받았다가 최근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별도로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협회 전현직 간부들의 위법 행위 전반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를 맡은 금천경찰서는 협회 관계자들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협회가 2021년 잡지출 예산의 75%를 사용해 조남제 전 사무총장에게 2980만원 상당의 골드바를 제공하는 등 업무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의뢰했다. 이 밖에도 2023년 세계농아인대회 예산을 불투명하게 운영했거나 특정 수어통역사의 섭외·출입을 제한하고 외부 강사 활동을 통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번 사건은 개별 범죄 혐의를 넘어 장애인 인권 보호와 관련 제도 관리의 구조적 공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과 복지·인권 영역 단체에 대한 감독이 사후 조사에 그쳐온 한계가 이번 사안에서 그대로 노출됐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인권 침해를 개인 일탈로 축소해선 안 된다”며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단체에 대한 상시 점검과 인사·채용 과정의 투명성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