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인도와의 크리켓 경기 보이콧 공식화

2026-02-06 13:00:04 게재

방글라데시와 정치·외교적 연대 스포츠 무대에 드리운 외교 갈등

파키스탄 정부가 2026년 남자 T20 크리켓 월드컵에서 인도와의 조별리그 경기를 치르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AP통신, ESPN 등에 따르면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2월 5일 각료회의를 통해 “우리는 방글라데시를 전적으로 지지해야 하며 인도와의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매우 신중하고 적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그간 침묵해 온 보이콧 배경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 밝힌 것이다.

파키스탄은 오는 7일부터 인도와 스리랑카가 공동 개최하는 T20 크리켓 월드컵에 참가하지만 15일로 예정된 인도와의 경기는 거부할 예정이다. 이는 대회에서 제외된 방글라데시에 대한 외교적 지지를 명확히 표명한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대표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인도 개최에 반대하며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인도 콜카타와 뭄바이에서 예정된 예선 경기들을 스리랑카에서 열게 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당하면서 최종적으로 출전을 철회했다.

국제크리켓위원회(ICC)는 이 사태가 국제 대회의 상업적 안정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파키스탄 크리켓 위원회에 대화와 조율을 촉구했다. ICC는 파키스탄이 인도전을 실제로 보이콧할 경우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방송권과 스폰서 계약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살만 알리 아가 대표팀 주장은 “이 결정은 선수단이 내린 것이 아니며 정부와 크리켓 위원회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내무부 장관이자 크리켓 위원회 위원장인 모신 나크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중 잣대가 적용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인도 역시 안보를 이유로 파키스탄 개최 대회를 불참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ICC가 방글라데시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경기 거부가 아니라 남아시아 지역의 복잡한 외교 관계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1947년 영국 식민지에서 함께 독립했지만 1971년 전쟁을 통해 분리됐다. 이 과정에서 인도가 방글라데시 독립을 적극 지원하며 양국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파키스탄과는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그러나 2024년 8월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인도로 망명하면서 정세가 급변했다. 이후 출범한 과도정부는 인도와의 관계를 빠르게 냉각시키고 파키스탄과는 관계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CC는 방글라데시가 빠진 본선 자리에 예선 순위가 가장 높은 스코틀랜드를 대체팀으로 선정했다. 이 결정은 ICC 이사회에서 14대 2로 통과됐으며, 반대표를 던진 두 곳 중 하나가 바로 파키스탄이었다.

크리켓은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돼 현재는 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중심으로 약 25억명의 팬을 보유한 세계적 스포츠다.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파키스탄의 보이콧은 국제 스포츠와 정치가 맞부딪히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