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헬기 부품 부풀리기’ 알에이치포커스 무죄

2026-02-09 13:00:22 게재

“세관 수집 증거 위법, 299억원 편취 단정 못해”

1심 “외부감사법 조항 위헌도 고려”…검찰 항소

러시아산 헬기 부품 수입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려 수백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알에이치포커스 김수언 대표와 법인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검찰이 불복해 항소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8부(한대균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관세법·외부감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대표와 법인, 관계회사 A사 임원 B씨에 대해 “범죄사실 증명이 없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지난 2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대표 등은 싱가포르에 설립한 ‘유령법인 A사’를 거래구조에 끼워 넣은 뒤 KA-32(카모프) 헬기 부품을 제조사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국가기관에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김 대표 등은 이를 통해 조달청·방위사업청·지방 소방본부 등으로부터 300여차례에 걸쳐 미화 2500만달러(한화 299억5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문제가 된 카모프 헬기는 한·러 군사기술 협력 차관 상환 사업(불곰사업) 일환으로 도입된 기종으로 2000년대 이후 산불 진화나 재난 대응 장비로 운용되고 있다. 알에이치포커스는 2016년 LG상사로부터 항공부문을 인수한 뒤 러시아제 헬기 정비와 부품 공급에서 사실상 단일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회사다.

1심 무죄 판단에는 수사 절차의 위법성이 핵심 내용이 됐다. 재판부는 서울세관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김 대표의 수첩과 이를 통해 취득한 싱가포르 소재 A사 계좌정보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제3자를 통해 수첩 내 인터넷뱅킹 정보에 접근해 영장 없이 계좌 정보를 출력했고, 김 대표의 참여권 보장과 압수목록 교부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방산·항공부품 수입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헬기 등 방산·항공 부품은 제조사 독점 구조, 장기간 유지·보수 필요성, 국제 정세에 따른 공급 리스크 등으로 인해 가격 산정 방식이 일반 소비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중간상 개입과 가격 차이만으로 정상가격이 아닌 허위 조작 가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정상가격을 산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A사가 사실상 김 대표의 지배하에 있는 종속회사임에도 특수관계자 거래를 공시하지 않은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관련 조항이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효력을 상실한 점을 근거로 무죄로 판단했다. 해당 결정은 죄질이 가벼워 벌금형이 적당해도 심판대상조항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어 피고인이 책임을 초과하는 형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을 산정하기 곤란할 경우에 벌금 상한액을 규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이라며 “이번 사건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내용을 종합해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헬기 부품) 가격을 조작하거나 국가기관을 기망해 부당이득을 취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형사소송법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검찰 항소에 따라 2심에서는 위법수집증거 판단의 타당성과 부품 가격 산정 구조, 해외 법인의 실질적 역할 등이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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