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끊기자 쿠바 도심이 멈췄다

2026-02-10 13:00:01 게재

미국 에너지 봉쇄정책

쿠바인 일상에 직격탄

2월 9일 쿠바 아바나의 이베리아 항공 사무실로 한 사람이 들어가고 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쿠바에 대한 미국의 에너지 제한 조치가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버스가 멈췄다. 대중교통은 사실상 마비됐다. 연료 부족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 봉쇄 조치가 쿠바 주민의 일상을 직접 흔들고 있다. 관광업에 이어 교육과 행정, 항공까지 연쇄 충격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는 9일(현지시간) 멕시코에 거주하는 쿠바 출신 대학생의 말을 인용해 “아바나 지역 주요 시내버스가 지난주부터 운행을 잠정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대학생 상당수는 수업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 대학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비슷하게 원격 수업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지역 간 고속버스도 대부분 끊긴 상태다.

아바나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통근 수단을 찾지 못해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전했다. 연료 재고 고갈의 여파는 지난 주말부터 본격화됐다. 시내 주유소에서는 디젤 판매가 중단됐다. 휘발유는 쿠바 페소가 아닌 달러로만 구매할 수 있다. 1회 구매 한도는 20리터다. 앱을 통한 대기 신청이 필요하지만 연료 확보가 되지 않아 며칠씩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쿠바 정부는 국영기업과 관공서에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일부 기관은 인력 재배치와 근로계약 해지 같은 비상 대책까지 검토하고 있다. 버스와 철도 운행은 축소됐다. 학교는 단축 수업에 들어갔다.

하늘길에도 비상이 걸렸다. 캐나다 항공사 에어캐나다는 9일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지속적인 항공유 부족을 고려해 쿠바행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향후 며칠 동안 약 3000명의 쿠바 방문객을 귀국시키기 위해 좌석을 비운 항공기를 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쿠바 관광업에는 직격탄이다. 최근 쿠바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다수를 캐나다인이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8일 쿠바 당국이 항공사들에 한 달간 항공기 연료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쿠바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항공편은 이륙 후 다른 국가에 들러 급유해야 한다. 에어프랑스는 같은 날 AFP에 카리브해 다른 지역에서 연료를 보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쿠바 정책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쿠바와 석유 거래를 하는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외국산 석유 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다.

쿠바는 오랫동안 베네수엘라 석유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공급이 급감했다. 쿠바는 자체 생산으로 하루 수요의 약 40%만 충당할 수 있다. 연료는 전력 생산과 교통, 농업, 공장 가동의 핵심이다. 공급이 막히면 국가 기능 전반이 흔들린다. 실제로 순환 정전은 일상이 됐다. 가정에서는 나무와 숯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도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8일자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 공산주의 혁명의 마지막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도 쿠바 정부 붕괴 예측이 여러 차례 빗나갔다고 지적한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쿠바는 버텼다. 그러나 이번에는 쿠바 경제를 떠받칠 외부 후원국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알자지라 방송 역시 8일 보도에서 미국의 석유 봉쇄로 쿠바 인구 1100만명이 연료 위기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버스 정류장은 비어 있고 정전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비상조치를 발표하며 태양광과 풍력 확대를 언급했다. 동시에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는 실패한 국가”라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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