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고난도 균형’ 필요한 대일외교

2026-02-11 13:00:01 게재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집권 자민당의 압도적 총선 승리는 동북아 정세에 심상찮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에서 단일 정당이 중의원 전체 의석수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민당은 전체 의석 465석 중 개헌안 발의선인 310석을 웃도는 316석을 차지했다.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까지 합하면 352석이다. 기존 야당은 문자 그대로 지리멸렬해 견제세력이란 의미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대승은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극우파 정치인으로서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등 중국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날카롭게 각을 세운 대결적 행태가 그동안 국가발전 침체 등으로 자신감을 잃고 극도로 위축돼 있던 일본사회를 뒤흔들고 한쪽으로 몰려가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 ‘평화헌법’ 개정 공언, 극우행보 가속화

‘미국우선주의’을 앞세운 2기 트럼프 정부 하에서 국제사회가 각자도생을 걱정해야 하는 ‘야만의 시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대미편향 일변도 외교로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져가던 일본이 ‘극우정치 부활’을 통해 중요 변수로 다시 주목받게 된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승리 직후 “헌법 개정을 위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공언하는 등 보수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임을 다짐했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탈바꿈할 개헌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국민들에게 국민투표 기회를 가능한 한 빨리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뿐 아니라 참의원에서도 3분의2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참의원은 여소야대 상태다. 의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통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기초 다지기는 성공한 셈이다.

자민당의 이런 우편향 행보는 한일 관계를 비롯해 동북아 전체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총선 전부터 대중국 견제에 앞장서 줄 다카이치 지지를 분명히 했다. 베선트 재무부 장관도 “일본이 강하면 아시아에서 미국도 강해진다”며 총선 승리를 적극 환영했다.

반면 중국은 반대 입장이 완강하다. 다카이치 정책을 ‘군국주의 부활’로 경계하고 있어 양국 대결과 긴장은 갈수록 팽팽해질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며 “극우세력이 정세를 오판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일본 국민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대응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카이치의 대만 관련 발언 철회도 재차 요구했다. 이러한 일본 자민당의 독주와 극우행보는 조만간 우리외교에 큰 시련을 안길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앞으로도 양국이 보다 넓고 깊은 협력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일 셔틀외교 복원 등 공들여 쌓아온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며 실용적 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도 “일본과 한국은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며 “앞으로도 대통령님과 일한 관계를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한일 간에는 아픈 과거사가 있는데다 지정학적으로 지향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무엇보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의 대결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균형 잡으며 국익 극대화 기회로 만들어야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공조를 강조할 것이고, 중국은 과거 항일투쟁 협력 역사 등을 일깨우며 서로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일 간에도 당장은 서로의 필요성 때문에 서로 무리를 삼가고 ‘관리’에 신경을 쓰겠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주도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국익을 극대화하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냉혹한 시련은 한편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전혀 힘이 없을 때는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온갖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국력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는 주도적으로 중심을 잡고 ‘고난도의 균형외교’를 펴 양쪽에서 존중받으며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바란다.

이원섭 내일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