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미국 소매판매 증가율 0%
저소득층 소비 위축이 경기둔화 신호 … 웬디스·피자헛 매출 연속 급감
소매판매는 11월 0.6% 증가 후 12월 사실상 멈춰섰다. 자동차와 주유소를 제외한 소매판매도 증가세가 사라졌다. GDP 산출에 반영되는 핵심 소매판매(컨트롤그룹)는 전월 대비 0.1% 감소해, 4분기 성장률 전망이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소비 둔화 조짐이 2026년 성장 경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고, “핵심 소매판매 부진으로 4분기 GDP 추정치가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표 하나로 경기 급랭을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같은 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숫자가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패스트푸드 업황으로 보여줬다. 인건비와 식재료비 상승을 가격 인상으로 떠넘긴 업체들이, 핵심 고객인 저소득층의 발길이 끊기면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블랙박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년 대비 고객 방문이 늘었다고 답한 패스트푸드 브랜드는 9%에 불과했다. 외식업 전체에서 방문 증가를 기록한 브랜드 비중(27%)과 비교해 크게 낮고, 고급·캐주얼 외식 등 다른 업태보다도 부진이 심각했다.
뉴욕의 한 웬디스 매장에서 햄버거 2개와 감자튀김을 14달러에 산 병원 직원은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며, 이제는 도시락을 싸거나 차라리 제대로 된 식당에 간다고 했다.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웬디스는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사회보장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는 “요즘은 뭐든 비싸다. 돈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고전은 미국 소비 양극화를 드러낸다. 저소득층 대상 브랜드는 매출이 줄고 방문이 감소하는 반면, 고소득층이 찾는 고급 외식은 상대적으로 선전한다. 실제로 2015년 이후 외식 물가는 52% 올랐지만, 집밥 식비는 30% 오르는 데 그쳤다. 최근 1년만 놓고도 메뉴 가격 상승률(4.1%)이 집밥 물가(2.4%)를 앞질렀다. ‘가장 값싼 한 끼’였던 패스트푸드조차 부담스러워졌고, 소스 등 부가 품목에 추가 요금을 받는 관행이 반발을 키웠다.
업체들은 할인 프로모션으로 손님을 붙잡는 ‘가성비 전쟁’에 나섰지만, 수익성이 깎이는 악순환에 빠졌다. 웬디스는 매출이 3개 분기 연속 감소하자 수백 개 매장을 폐점하기 시작했다. 피자헛은 최근 분기 미국 매출이 3% 줄며 9개 분기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과거 경기 둔화기에는 고소득층이 고급 식당 대신 패스트푸드로 내려오면서 저소득층의 지출 감소를 상쇄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원가 압박도 계속된다. 인력난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뛰고, 소고기 가격 급등으로 재료비 부담까지 커졌다. 가격을 더 올리면 소비자 저항이 커지고, 할인에 기대면 마진이 줄어드는 딜레마다.
연말 소매판매가 멈춰 서면서 시장은 성장 둔화와 경기 냉각 사이의 경계선을 다시 따지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살아났지만, 현장에서는 저소득층 소비에 의존해온 업종부터 균열이 번지는 모습이 포착된다. 결국 관건은 노동시장이라고 FT는 분석했다. 고용과 임금이 버티면 소비 둔화는 제한적 조정에 그칠 수 있지만, 고용이 식는 흐름이 확인되면 연준의 정책 판단과 위험자산 심리도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