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10년…“다시 돌아가고 싶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도라산서 공단재개 요구
‘남북경협의 최일선 일꾼’ 자부심 지키고 싶어
“정부가 확인한 피해액조차 왜 지급하지 않나”
기억하기 싫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을 닫았다. 북한이 아니다. 개성공단 입주를 권유했던 우리 정부다. 날벼락이다. 정부는 3시간 내에 개성공단에서 나오란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박근혜정부는 냉정히 거절했다. 결국 설비와 제품, 원부자재를 두고 몸만 빠져 나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열리 것이라 위로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124개 입주기업중 30% 이상이 문을 닫았다.
문재인정부 때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열리지 않았다. 정부가 확정한 피해액조차 다 지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도 남북경협의 최일선 일꾼이라는 자부심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청춘을 바쳐 일군 재산이 여전히 개성공단에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굳게 닫힌 CIQ 출입문 = 10년 후인 2026년 2월 10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모였다. 바삐 오갔던 CIQ 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단단한 철문은 개성으로 향하는 도로를 막아섰다. 현실이다.
“우리는 개성공단에 가고 싶다.” 애절한 호소가 비무장지대에 퍼진다.
조경주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10년전 개성공단 기업들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공장을 하루아침에 빼앗겼다”고 회상했다. 청춘을 바쳐 마련한 재산 대부분이 그곳에 남아있어 공단을 포기할 수 없다.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는 “지난 10년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업을 유지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언젠가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녹색섬유는 2007년 2월 입주했다. 공단패쇄 이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개성공단으로 돌아가고 싶은 희망 때문이다. 수십억원의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결국 더는 버틸 수 없었다. 2023년 12월말 대부분의 임직원을 떠나보냈다. 지금 녹색섬유는 휴업 상태다.
박 대표는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해본 뒤에 맞이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의 시간은 10년전 2월 10일 그날 이후 멈춰있다.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는 2009년 2월 남동생과 개성공단에서 청바지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이 가진 잠재력을 높이 산 최 대표는 100억원을 넘게 투자했다. 한국에 있던 설비를 모두 북한으로 옮겼다. 17년이 지난 지금 청춘을 쏟아부은 공장은 온데간데없고 형제는 남은 건 빚뿐인 신용불량자 신세다.
30년간을 흑자를 이어가던 의류업체 만선도 지금은 휴업상태다.
◆30년 흑자기업도 휴업상태 =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당장 원하는 건 공단방문과 생존대책이다.
협회는 북한에 기업인들의 공단방문 승인을 호소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남북 간 합의를 신뢰하고 그곳에서 기업활동을 했을 뿐 어떠한 잘못도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정부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보호를 위한 방문승인에 책임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재명정부에는 △공단재개 전까지 기업존속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 마련 △자산 점검을 위한 제한적 개성공단 방문 허용 △남북 간 대화재개를 통한 개성공단 정상화 노력을 요구했다.
실질적 지원책은 기업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기업들은 정부지원에 불만이 크다. 정부가 강제로 폐쇄해 놓은 것도 모자라 정부가 확정한 피해액조차 다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국내 유명 회계법인의 조사를 거쳐 개성공단기업 피해액을 확인했다. 정부 피해확인 금액은 모두 7861억원이다. 이를 근거로 기업에게 4회에 걸쳐 지원했다. 모두 5786억원 규모다. 즉 아직 2075억원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기업들이 “정부가 확인한 금액이라도 전액 지원해 기업들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요구해 온 근거다.
기업들을 분통케 하는 건 정부지원이 사실상 대출이라는 점이다. 피해보상이 아니다. 정부지원액은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갚아야하는 돈이다. 성현상 만선 대표는 “우리 회사는 정부확인 금액 중 20억원 정도 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확인하고도 지급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차갑게 식어있는 남북관계 = ‘남북경협의 선구자’. 개성공단기업들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자존심이다.
유동옥 대화연료펌프 회장은 “경제적 이점을 누리는 것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소명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김진향 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도 “개성공단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음을 잊지 말아달라”며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기업인들이 다시 뛸 수 있도록 한 맺힌 손을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에 호의적이다. 통일부는 지난 10일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이자 남북 공동성장을 위한 대표적 실천공간”이라며 “가장 모범적인 ‘통일의 실험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는 “남북 간 상호신뢰와 공동성장의 토대를 스스로 훼손한 자해 행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차갑게 식어있다. 북한은 2020년 6월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윤석열정부의 대북강경노선에 대응해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과거 남북의 모든 합의를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한편 개성공단은 2003년 6월 첫 삽을 떴다. 한때 120여개 기업이 입주해 5만여명의 북한근로자들이 일했다. 박근혜정부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연이은 장거리로켓 발사에 따른 대응 조처로 공단을 폐쇄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