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대통령의 회환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2026-02-27 13:00:04 게재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직 중 부동산 정책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지도자가 자신의 핵심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진정한 고백은 국정운영의 엄중함을 보여주며 국민적 존경을 받는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재명 대통령 또한 특유의 실용주의적 결단력으로 부동산 시장의 난제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최근의 지표들은 지도자의 명확한 철학이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는 놀라운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처럼 눈부신 결단과 성찰의 흐름 속에서도 유독 ‘산업안전’ 분야만큼은 몽매한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 있다. 바로 규제와 처벌만 강화하면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교조적 맹신이다.

안전격차 2.3배의 내막

우리 법의 모태이고 우리와 산업구조까지 유사한 독일과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을 보면 우리의 정책은 번지수가 이미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독일과 우리의 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약 30% 정도이지만 중대산업재해는 200% 이상의 격차를 보인다. 건설업은 특히 심각하다. 독일 건설업은 전산업 평균(0.15)과의 격차가 2.6배 정도로 이는 안전선진국들의 보편적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의 건설업은 전산업 평균(0.39)보다 4배 가까이 높다.

전체 특히 건설업, 이 엄청난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처벌’이 아니다. 바로 독일 건설도급규정(VOB)과 하도급, 고용구조의 차이다. 독일 건설업 종사자의 80% 이상이 정규직이며 숙련된 노동력이 현장 안전의 버팀목이다. 반면 우리는 일용직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하다. 진범인 ‘일용직 과 다단계 하도급’은 놔두고 규제로 헛발질만 하는 셈이다.

안전관리비가 없는 독일

특히 안전비용을 다루는 방식에서 두 나라의 수준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은 공사비와 별도로 계상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제도를 운용한다. 이는 공사 착공 후 개인 보호구와 기초적 안전에 소요되는 최소 비용이기에 현장의 실제 위험을 반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독일은 공사비 세부 내역에 안전을 고려한 비용을 직접 반영한다. 예를 들어 ‘고소 작업’이 있다면 그 작업을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가시설과 안전감시인 배치 등을 설계에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즉 안전 비용은 ‘보조 비용’이 아니라 ‘공사비’ 그 자체다.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공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건설기술진흥법에 반영해야 할 이런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산업안전보건법규와 중복규제 문제도 정리하지 못한 ‘건설안전특별법’ 신설은 망발이지 싶다.

저자의 무지인가 이기심인가

왜 이런 명백한 정보를 두고도 규제 강화에만 매몰되는가. 필자는 ‘정책 저자층 관료’의 오류를 지목한다. 과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했듯, 현재 국토부 관료들도 ‘안전’을 명분 삼아 자신들의 권한과 퇴직 후 보직 같은 ‘단꿀’에 사로잡혀 있지 싶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효과 없는 이중규제인 것을 알고도 특별법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국민생명을 담보로 부당 이득을 얻으려는 ‘범죄’다. 몰랐다면 공직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무지’다. ‘안성 고속도로 붕괴사고 조사’ 같은 공공재 오염과 법 제정 전부터 대기업 현장을 찾아 점령군처럼 호가호위하며 으름짱을 놓는 국토부 관료에게서 실력도, 진정성도 찾기 어렵다.

대기업에 대한 모든 안전규제를 2~3년간 전면 정지해 보자

사이비 종교 같은 이 집단 최면을 깨기 위한 사회적 실험을 제안한다. 향후 2~3년간 대기업(1000인 이상)에 대해 중대재해 수조사를 제외한 모든 안전규제를 전면 정지해 보자. 대기업의 사망만인율은 이미 독일 수준(0.12)에 도달했다. 단언컨대 사고예방에 도움될 바 없는 관료들의 간섭을 멈춘다고해서 유의미한 사망재해 증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정책으로 자리 잡힌다면 면책용 서류 만들기에 낭비되던 엄청난 자원은 대한민국 안전을 선도할 새로운 기법 창출에 쓰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실용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지도자다. 하지만 현재의 산업안전 정책은 실무 관료들이 파놓은 ‘교조적 규제’의 함정에 빠져 있다. 규제를 늘리는 결단이 아니라 권력의 단맛에 취한 관료를 꾸짓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실용 정책 입안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대통령은 퇴임 후 회한의 고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