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리스크에 커지는 에너지안보 우려
가격 신호 막힌 가스, 수요 관리 못 하면 위기 반복
연동제 정상화 등 시장 체제 개혁 시급 … 공급 충격 대응력 높이기 위해 필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면서 대한민국 가스 시장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제대로 된 가격 신호가 작동해 소비자들이 수요 관리를 적절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시장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운송이 한달 동안 중단될 경우 유럽 가스 가격과 아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현물 가격이 130%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가스공사는 도입 물량의 상당 부분을 장기계약으로 조달하기 때문에 현물 가격 급등이 국내 요금에 즉각 반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공급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가스공사는 부족분을 현물 시장에서 긴급 조달해야 하고 장기계약 역시 재협상 과정에서 가격 상승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2일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도시가스나 전기요금에 원가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미 적자가 상당한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손실을 메우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 민간기업들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등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0년대 걸프전 이후 유류시장 자유화 등으로 수요관리가 가능해진 것처럼 전력·가스 시장에서도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격 신호가 제대로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수요관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그 왜곡된 비용은 한국가스공사 부채로 쌓였다가 결국 국민 세금이나 요금 폭탄으로 돌아오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4조1348억원에 달한다.
물론 전쟁에 따른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 ‘공급 다변화’도 필요하다. 2일 정부 역시 중동발 수급 차질이 실제 발생하는 경우 우선 업계 차원에서 중동 외 물량 도입 등 추가 물량 확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급 다변화가 구조 개혁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된 수요관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공급 충격에 취약한 구조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가격 신호에 반응해 소비를 줄이거나 시간대를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 안보가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일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물량을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격 신호를 통해 수요를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며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해도 요금이 제때 조정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그 부담은 결국 공기업 부채로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가스도 연동제가 제대로 작동해서 가격이 탄력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공급 충격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전소가 쓰는 LNG의 경우 연동제가 작동돼 국제 가격이 오르면 요금에 비교적 빨리 반영되지만 전기요금에 간접 반영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바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반면 가정이나 상가 난방용 등으로 활용되는 도시가스용 가스의 경우 연동제가 사실상 작동이 되지 않는다.
유 교수는 “해외는 도시가스용 LNG가 발전용보다 비싸지만 대한민국만 거의 유일하게 반대”라며 “기체 손실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발전용이 도시가스용보다 더 가격이 높은 건 비정상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이란 남쪽과 오만·아랍에미리트 사이에 끼인 좁은 바닷길인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의 요충지로 통한다.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 통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