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국가들, 중립 접고 직접 나서나

2026-03-04 13:00:02 게재

UAE, 이란 기지 타격 검토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걸프 국가들이 중립 기조를 접고 군사 대응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가 자국을 겨냥한 미사일·드론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이란의 미사일 관련 표적을 직접 타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미국 매체 악시오스(Axios)가 3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역내 확전 우려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UAE 지도부는 이란이 걸프 지역을 향해 드론과 탄도미사일 공격을 잇따라 감행하자 추가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란 영토 내 미사일 발사 기지나 관련 군사시설을 제한적으로 타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UAE 정부는 공식적으로 군사 행동을 결정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자국 영토와 주요 에너지 인프라를 지키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있다.

쿠웨이트대학 바데르 알-사이프 교수는 걸프 국가들이 당장 전쟁에 직접 뛰어들 가능성은 낮지만, 이란의 공격이 계속될 경우 미국에 영공 개방이나 기지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랑스 르몽드가 전한 이 같은 분석은 걸프 국가들의 ‘대응’이 자국군의 직접 타격보다는 미군 작전 지원 확대 형태로 현실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디언도 2일,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공식적인 군사 행동 선언은 유보했지만 지역 안보와 안정을 위해 군사적 대응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GCC 6개국 외교장관들은 지난 1일 화상회의를 열고 이란의 공격에 맞설 선택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그중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UAE다. UAE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자국 영토를 반복적으로 겨냥하자 항의의 뜻으로 테헤란 주재 대사를 소환했다. UAE 당국에 따르면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174발 가운데 161발을 요격하고, 드론 689대 중 645대를 격추했으며 순항미사일 8발도 전부 방어해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3명이 숨지고 68명이 경상을 입었다.

카타르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카타르 국방부는 산업도시 라스라판의 에너지 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이로 인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카타르 외교부 대변인은 “민간인과 시설을 겨냥한 공격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인근에서도 이란 드론이 라스타누라 정유시설을 겨냥해 공격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란은 사우디 에너지 시설 공격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오만도 수도 무스카트 인근 해상 약 50마일 지점에서 유조선이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란 핵 협상의 전통적 중재자로 꼽혀온 오만마저 피해를 입으면서, 중립적 외교 공간마저 좁아지는 모양새다.

이란의 거듭된 공격은 역내 국가 간 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수단·예멘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사우디와 UAE는 최근 정상 간 통화를 통해 공동 대응 필요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걸프 국가들은 여전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며, 자국 기지와 영공을 이란 공격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자국 영토와 에너지 인프라가 반복적으로 공격받으면서 그 명분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확전이냐, 자제냐. 걸프 국가들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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