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위한 기술평가 2571건 조작 의혹
경찰, 한국평가데이터 수사 후 법리 검토
지식산업센터 대출 위해 등급 조작 정황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한국평가데이터의 기술신용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이 수사를 의뢰한 사건으로 경찰은 신용정보법 위반 적용 범위 등을 검토한 뒤 최종 처분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5일 경찰과 금융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국내 대표 기술신용평가기관이 기술력 없는 기업에 평가서를 발급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경찰 안팎에서는 기술평가기관의 영업 구조와 평가 방식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수사가 다른 평가기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감원이 작성한 검사 의견서에 따르면 한국평가데이터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출과 관련된 업체 2571곳에 기술신용평가서를 발급했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일부 업체가 기술기업이 아님에도 기술기업처럼 평가된 사례가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 검사에서는 대표 경력, 경영진 구성, 매출 현황, 주요 설비, 핵심 기술, 기술개발 실적 등 주요 평가 항목이 공란으로 남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사례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확인이나 기술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등급이 산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부 업체는 기술력이 전혀 없는 비기술 업종임에도 중간 이상 수준의 기술신용등급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술신용등급은 AAA부터 D까지 산출되며 등급에 따라 은행 대출 승인 여부와 대출 한도가 결정된다.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는 평가 등급 산정 과정에 내부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 업무를 담당한 직원은 금감원 조사에서 “영업부서 요구에 맞춰 등급을 반영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문건에는 비기술 업종 업체를 기술 업종으로 변경해 평가를 진행하라는 지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의혹의 배경으로는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출 구조가 지목된다. 지식산업센터는 정보기술 등 기술 기반 기업이 입주하는 산업시설이지만 기술신용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은행 대출과 금리 조건에서 유리해진다. 금감원은 비기술 업체의 분양 대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기술신용평가가 활용됐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술신용평가는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이라도 기술력이 우수하면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입됐다. 현재 기술금융 시장 규모는 30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평가기관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제도의 신뢰를 좌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평가데이터는 2005년 국책기관과 시중은행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기업신용정보 조사·평가 전문기관이다. 산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이 주주로 참여해 공공 성격이 강하다.
금감원은 이번 사안을 기술신용평가 제도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위법 행위로 보고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한국평가데이터 전현직 임직원의 형사 책임 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동시에 기술평가기관의 영업 구조와 감독 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 논의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평가데이터측은 “금감원의 지적을 받고 내부적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