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자재 무역 병목 흔들린다
이란 전쟁이 건드린 ‘호르무즈 리스크’ … 에너지·비료·식량 가격 동시 상승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형적인 농업 생산 충격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 세계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유의 주요 수출국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농지와 항만이 타격을 입고 농업 노동력이 감소하면서 곡물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실제로 당시 세계 식량 가격은 급등했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식량 위기 가능성이 제기됐다. 여기에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까지 겹치면서 러시아 원유 공급 우려가 커졌고 국제 유가도 급등했다.
하지만 이번 이란 전쟁의 경제적 구조는 다르다. 이란 자체가 세계 식량 생산의 중심국은 아니다. 대신 중동은 세계 에너지와 비료 산업의 핵심 생산 지역이며,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략적 수송로를 끼고 있다. 문제는 생산량이 아니라 이 해협이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지나가는 핵심 해상 통로다. 이곳을 통해 중동의 원유와 가스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동한다. 이 통로가 불안해지면 특정 국가의 생산 문제가 아니라 세계 에너지 물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충격은 비료 시장까지 이어진다.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의하면 중동은 세계 최대 비료 생산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호르무즈 해협은 비료 원료 수출의 핵심 경로다. 세계 요소(urea) 수출의 약 35%가 이 해협을 통과하며 비료 생산에 필요한 황(sulphur) 수출도 상당량이 이 경로에 의존한다.
이미 시장에서는 가격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중동 지역 요소 가격은 최근 며칠 사이 톤당 약 130달러 상승해 575~650달러 수준으로 뛰었고 암모니아 선물 가격도 급등했다. 비료 산업은 특히 천연가스 가격에 민감해 가스 가격 상승이 생산 비용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비료 가격 상승은 결국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럽 비료 기업 야라(Yara)의 스베인 토레 홀세테르 최고경영자는 비료 공급이 중단될 경우 농업 생산량이 첫 수확에서 최대 50%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량 충격의 방식도 우크라 전쟁과는 다르다. 2022년에는 곡물 수출이 막히면서 식량 가격이 비교적 빠르게 상승했다.
반면 이번에는 비료 부족이 농업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충격이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단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빵 가격은 6~10주 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고 육류 가격 상승은 그보다 늦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충격의 범위도 다르다. 우크라 전쟁의 에너지 충격은 주로 유럽에 집중됐다. 유럽은 러시아 파이프 가스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 중동 에너지 공급은 아시아와 유럽, 미국 시장까지 LNG 선박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일본과 한국,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주요 경제권은 중동 원유와 LNG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이번 충격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와 농업 공급망 전체를 동시에 흔들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료 가격을 밀어 올리고 이는 다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쇄 효과를 낳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제재와 정책 변화가 공급 흐름을 바꾸는 요인이었다. 실제로 러시아 석유는 이후 인도와 중국 등으로 방향을 바꾸며 일정 부분 시장 조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막힐 경우 상황은 다르다. 해상 운송 자체가 물리적으로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이 경우 단순한 운송 차질을 넘어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조선이 통과하지 못해 원유를 실어 나르지 못하면 저장 시설이 빠르게 가득 차고 결국 일부 산유국은 생산을 중단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라크 등 일부 산유국에서는 수출 차질로 저장 공간 부족이 나타나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생산을 한 번 멈추면 재개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유전의 압력 관리와 설비 점검이 필요해 생산 재개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원유와 가스 공급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이 세계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선다. 세계 원자재 무역의 핵심 병목이 흔들리는 ‘수송 충격’이라는 점에서 에너지·비료·식량을 잇는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동시에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