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트윗 한 줄에 유가 ‘출렁’

2026-03-11 13:00:06 게재

미 에너지장관 “유조선 호위” 게시 후 삭제 … 10분 만에 수천만달러 증발

10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내내 월가의 화두는 유가였다. UPI=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극도로 민감해진 가운데, 미국 정부 고위 인사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하나가 글로벌 원유 시장을 크게 흔드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호위했다”고 밝혔다가 이를 삭제하면서 유가와 금융시장이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성공적으로 호위해 글로벌 시장으로 석유 공급이 계속되도록 했다”고 게시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 속에서도 글로벌 에너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게시물은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군이 실제로 유조선 호위 작전에 나섰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즉각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원유 공급이 유지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되면서 원유·디젤·휘발유 선물 가격 등 국제 유가는 급락했고,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은 몇 분 만에 삭제됐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나오는 전쟁 관련 정보의 혼란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후 백악관은 “현재 시점에서 미 해군이 유조선이나 상업 선박을 호위한 적이 없다”고 공식 확인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라이트 장관 계정에 올라온 영상은 에너지부 직원이 잘못된 설명을 붙인 것으로 확인돼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시 “미군 병력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을 호위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게시물 내용을 부인했다.

짧은 시간 동안의 정보 혼선은 시장에 큰 충격을 남겼다. 이미 삭제된 이 게시물 하나로 수백만달러 규모의 거래가 날아간 것. WSJ에 따르면 미 원유 선물 가격은 한때 최대 19% 급락했고, 원유 선물과 연동된 상장지수펀드(ETF)의 시가총액 약 8400만달러가 약 10분 사이 증발했다. 결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유(WTI)는 배럴당 83.45달러로 12% 하락 마감해 최근 4년 사이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장중 최저가는 76.73달러까지 떨어지며 이틀 전 고점인 119달러 대비 약 36% 급락하기도 했다.

주식시장도 주요 지수가 온종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인공지능 투자 확대 기대 속에 샌디스크·마이크론·코닝 등 일부 기술주는 3% 이상 올랐지만, 시장 전반은 방향성을 찾지 못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장중 1% 상승했다가 결국 약보합으로 마감했고, S&P500은 0.2% 하락했다. 나스닥은 보합권에서 마감했다.

항공주와 에너지주는 유가 급락 영향으로 약세를 보였다. 델타항공과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은 모두 2% 이상 하락했고, 주요 석유기업과 LNG·가스 업체들도 일제히 떨어지며 S&P500 에너지 업종은 이날 1.3% 하락해 가장 부진한 업종이 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란이 이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유조선 통항을 위협하면서 국제 유가는 최근 급등세를 보여 왔다. 미 행정부는 지난 3일 유조선 호위 가능성을 언급하며 해군력 투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적인 유가 상승 우려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에서 방향을 바꾸기를 기다리고 있는 월가에서는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실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미즈호 증권의 원자재 전문가 로버트 요거는 투자자들이 모든 헤드라인에 반응하고 투기적 거래가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상황에서 “정치적 발언과 시장 반응 사이에 일종의 무작위성이 존재한다”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동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공급 차질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사우디 아람코는 최근 “에너지 흐름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석유 시장에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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