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오일쇼크 되살리는 '2026년 중동'
유가 4배 폭등의 역사 ‘호르무즈’가 인질 … 스태그플레이션 징후 나타나
미국과 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의 궤적을 밟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공급망 붕괴와 가격 폭등이라는 ‘닮은꼴’ 위기 속에서도 에너지 믹스의 다변화와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라는 ‘차이점’이 향후 사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지정학적 앙숙 간 직접 충돌에서 시작 = 11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2026년 3월 현재의 위기는 1·2차 오일쇼크와 발생 원인 및 전개 과정에서 놀랄 만큼 평행이론을 보인다.
1차 오일쇼크(1973~1974년)가 제4차 중동전쟁, 2차 오일쇼크(1979~1980년)가 이란 혁명에서 촉발된 것과 비슷하게 이번 위기 역시 이스라엘과 이란이라는 지정학적 앙숙 간 직접 충돌에서 시작됐다.
2026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한 것은 과거 오일쇼크 당시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의 금수 조치 및 감산 시행과 맞먹는 파괴력을 지닌다. 전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27%가 지나는 9.6km의 좁은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인질로 잡히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되는 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또 에너지 가격 급등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며 저성장·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도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1차 오일쇼크 전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2.90달러에서 11.65달러(1974년 1월)까지 약 4배 가까이 상승했다. 2차 오일쇼크 때에는 Fed와 프린스턴대 보고서에 따르면 13~16달러에서 33~39.5달러까지 치솟았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제안정 핵심 요소 = 반면 현재와 1·2차 오일쇼크의 차이점은 미국이 더 이상 석유 수입국이 아니며, 석유가 유일한 에너지 자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1970년대 미국은 중동 석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위기에 취약했지만, 2026년 현재 미국은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수출국이다. 미국의 셰일오일과 LNG는 중동 리스크를 상쇄하는 강력한 방어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또 석유가 전력 생산과 난방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과거와 달리 2026년에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천연가스 등 다양한 대체 수단이 존재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 산업을 지탱하는 전력망에서 석유 발전 비중은 5% 미만으로 낮아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제 안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은 “1975년 글로벌 경기 침체는 에너지 비용 상승과 수요 위축을 가져온 1차 오일쇼크에 의해 촉발됐다”며 “1976년 중반에야 산업국가 전반에서 광범위한 회복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1982년 세계 경기 침체 역시 1979년 2차 오일쇼크와 미국 및 주요 선진국의 긴축 정책, 중남미 부채 위기 등이 겹쳐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믹스 다변화가 위기 차단벽 = 때문에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단기적 대응과 구조적 대응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우선 비축유 활용과 도입선 다변화 전략을 통해 단기 공급 불안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동 외 지역에서의 원유와 LNG 도입 확대, 장기 공급 계약 확대, 해상 운송 안정화 등이 중요하다.
또한 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와 산업 비용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 등 에너지 민감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물가 안정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구조 자체를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 시스템 안정화, 원전 활용, 에너지 효율 투자 등을 통해 특정 지역 석유 공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