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 강화 이후 ‘월세화’ 뚜렷

2026-03-11 13:00:02 게재

서울 월세 비중 47→56% 상승 … 비아파트·중저가 주택 중심 전환 확대

깡통전세 대응을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요건을 강화한 이후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특히 비아파트와 중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월세 비중이 크게 늘면서 청년층과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금 반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시장에서는 전세 계약 감소와 월세 증가라는 구조 변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11일 HUG 주택도시금융연구원이 발간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 변화가 주택 임대차 시장 구조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임대차 시장의 월세 계약 비중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요건 강화 이후 55.75%로 나타났다. 제도 변화 이전 월세 비율이 47.00%였던 것과 비교하면 8.76%p 상승한 수치다.

연구진은 국토교통부 임대차 실거래 자료를 활용해 2020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서울 임대차 계약 309만9299건을 분석했다. 또 2023년 1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요건 강화 조치를 기준으로 제도 변화 이전과 이후 각 2년 6개월을 구분해 임대차 계약 구조 변화를 살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최근 전세사기와 보증사고가 늘면서 보증 가입요건이 강화됐고 보증 가능한 전세금 규모도 줄어들었다. 보증 기준을 넘는 전세금을 낮추거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계약이 늘면서 전세 중심 계약 구조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세금 반환 위험을 줄이려는 정책이 시장에서는 월세 계약 확대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주택 유형별로 보면 월세화 현상은 비아파트 시장에서 두드러졌다. 아파트의 월세 비율은 40.61%에서 42.10%로 1.49%p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연립·다세대는 35.22%에서 52.99%로 17.77%p 증가했고 오피스텔은 53.24%에서 67.87%, 단독·다가구는 63.18%에서 76.20%로 각각 크게 늘었다.

가격대별로도 변화는 뚜렷했다. 서울 최우선변제금 상한인 5500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저가 임대주택의 월세 비율은 38.41%에서 59.15%로 20.74%p 상승했고 중저가 주택도 11.86%p 증가했다. 반면 고가 임대주택은 3.89%p 상승에 그쳤다.

전세는 목돈을 맡기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한국 특유의 임대차 제도로 주거 안정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임차인은 매달 임대료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고 임대인은 보증금을 활용해 자금을 운용하는 구조가 가능해 한국 주택시장 특유의 금융 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확산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가 확대되면 가계 주거비 부담 구조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전세는 초기 보증금 부담이 크지만 매달 지출이 없는 반면 월세는 지속적인 현금 지출이 발생한다. 특히 청년층과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비아파트와 중저가 주택에서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거비 지출 증가가 가계 소비 여력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달 19일 서울 서대문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연구진은 금리 환경도 월세 전환을 촉진한 요인으로 꼽았다. 전세대출금리와 전월세 전환율이 상승할수록 월세 계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대응을 위한 제도 강화가 필요하지만 임대차 시장 구조 변화에 대한 정책 대응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세보증 제도 강화가 전세 중심 임대차 구조를 약화시키고 월세 전환을 촉진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월세화가 비아파트와 중저가 임대주택 시장에서 빠르게 진행될 경우 청년층과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전세보증 제도 개선과 함께 공공임대 확대, 임차인 보호 장치 강화 등 임대차 시장 전반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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