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스위스 ‘온’의 기분 나쁘지 않은 기습
느닷없이 기습을 당하면 기분 나쁘다. 인지상정이다. 기업도 다를 게 없다. 갑작스런 공세엔 신경이 더 많이 쓰인다. 뭔 꿍꿍이셈인지 괜스레 찜찜하다.
지난달 초 한국 스포츠용품시장에 불쑥 얼굴을 내민 ‘온’ 행보가 그랬다. 이름도 생소한 온은 스스로를 ‘스위스 프리미엄 스포츠웨어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2010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알프스가 고향(본사)이다. 업력은 짧지만 웬만한 스포츠의류와 신발을 다 만든다. 200단계에 달하는 전통적인 신발 제조공정을 로봇이 특수 소재를 분사해 상부(갑피)를 한번에 제작하는 압축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트스프레이란 기술에 특화했단 의미다. 소개글만 보면 기술력과 효율성만큼은 자신감에 차있다. 온은 그러면서 부산에 공장을 지었다는 사실을 굳이 밝혔다.
듣고 보니 경쟁 치열한 한국스포츠용품시장에 후발주자 하나가 새로 합류한 것 이상의 행보였던 셈이다. 인력을 거의 쓰지 않는 로봇공장이라지만 생산시설까지 들여온 외국기업은 드물다. 나이키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같은 유명 글로벌브랜드마저 동남아시아 등 인건비 싼 지역에서 주로 제품을 만든다. 인건비에 임대료까지 비싼 한국에 공장을 짓는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조차 인건비 싼 해외로 나가는 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한국에 공장을 세웠다’는 기습 공격성 발언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비행기로 12시간 이상 걸리는 한국에 공장을 왜 지었을까’ 라는 의문 역시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일부에선 ‘라이트스프레이’ 글로벌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자동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과 속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을 택한 거라 추측한다. 지난해 7월 스위스 취리히에 이어 아시아시장 공략 핵심거점으로 부산에 두번째 로봇공장을 세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물류비와 생산시간을 줄이려는 목적도 분명해 보인다. 우수한 한국 로보틱스와 자동화 기술력을 활용해 고품질 운동화를 신속하게 생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종합하면 한국식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도입해 고품질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고 글로벌 공급망 위험을 줄이며 아시아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세계 스포츠용품시장에서 테스트베드(시험무대) 정도였던 한국이 해외판매 전초기지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해외로 빠져나간 국내기업까지 돌아오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기대마저 생긴다. K-기술력과 K-공급망에 K-브랜드력까지 ‘깐깐한’ 유럽 강소국으로부터 인정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곱씹어보면 스위스 스포츠웨어브랜드 온의 기습이 마냥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병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