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유가 200달러’ 위협 현실화될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 변수 세계 에너지시장 초긴장
유럽 매체 유로뉴스(Euronews)는 12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최근 전쟁 국면에서 ‘에너지 압박 전략’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군사적 대응을 넘어 세계 경제 전체에 전쟁 비용을 확산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대변인은 전쟁 발발 직후 국영 언론을 통해 “비겁하고 반인도적인 공격이 계속된다면 세계는 배럴당 200달러의 유가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이후 테헤란의 핵심 외교·군사 수사로 자리 잡았다. 이란 카탐 알안비야 군사령부 대변인 에브라힘 졸파카리는 국영 언론 인터뷰에서 “유가는 당신들이 불안정하게 만든 지역 안보에 달려 있다”며 “세계는 배럴당 200달러의 유가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전략 핵심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어 전쟁 비용을 국제화하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란이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이 결정적 변수로 지목된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 중 하나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태국, 일본, 마셜제도 국기를 단 선박을 포함한 중립국 선박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해상 교역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서방 국가 내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에너지 시장을 교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사 행동을 중단하도록 국제사회가 압박하도록 만들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에 도달한다는 전망은 과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은 아니다. 유로뉴스는 2008년 국제 유가가 금융위기 직전 배럴당 약 147달러까지 상승한 바 있으며, 이를 현재 물가 수준으로 환산하면 약 211달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1973~1974년 아랍 석유 금수 조치 당시 유가는 이전 대비 약 4배 상승했고, 1979년 이란 혁명 당시에도 2배 이상 급등했다. 1980년 기록된 배럴당 약 39.5달러 역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60달러 수준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례는 지정학적 충격이 실제로 극단적인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국제 유가도 이미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다. 유로뉴스는 브렌트유 가격이 전쟁 발발 이전인 2월 중순 배럴당 약 60달러 수준에서 최근 100달러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 동시 방출을 통해 시장 안정을 시도했지만 이란의 석유 시설 공격과 해상 위협이 계속되면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분석된다.
여기에 전쟁 위험이 커지면서 보험사들이 전쟁 위험 보장을 취소하고 해운 회사들이 선단 재배치를 시작해 에너지 운송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은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하기 전부터 시장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경고도 나오고 있다.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연말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약 0.7% 감소하고 영국·유로존·일본 경제가 동시에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상승은 미국 정치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 백악관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존스법(Jones Act) 한시 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필수 에너지 제품과 농산물이 미국 항구들에 원활히 유입될 수 있도록 존스법의 일시적 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항구 사이 물자 운송을 미국 선박으로만 제한하는 규정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30일간 면제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원유, 휘발유, 경유, 액화천연가스(LNG), 비료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가 유가 상승을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그라운드워크 컬래버레이티브의 알렉스 자케즈 정책국장은 WP 인터뷰에서 존스법 면제가 휘발유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갤런당 2센트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 제프리스 역시 보고서에서 전략 비축유 방출이나 존스법 면제 같은 긴급 조치가 유가 상승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 공급 충격을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