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국이 전략비축유 풀어도 유가는 왜 치솟나
호르무즈 막혀 비축유 역부족
하루 2000만배럴 공급 막혀
비축유를 방출하든 하지 않든, 중동의 핵심 원유·가스 수송로가 사실상 막힌 상태가 이어지는 한 전망은 여전히 암울하다. 세계 원유 시장의 트레이더들이 이제 유가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국제 유가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번 상승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2일 32개국이 비상 비축유를 사상 최대 규모로 방출한다고 발표한 뒤에도 이어졌다.
이 조치는 시장을 진정시키기보다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 중동 산유국과 주요 소비국을 잇는 핵심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언제 다시 열릴지 불투명하다는 점만 부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12일 해협에서 선박 3척이 공격받으면서 더 커졌다.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물량은 하루 2000만배럴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 이 항로의 물동량은 멈춘 상태다. 세계 각국이 전략비축유 4억배럴을 풀기로 했지만, 평소 이 해협을 거치던 원유를 기준으로 하면 약 20일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쟁은 이미 2주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이자 전 셰브론 임원인 에드워드 C. 차우는 “아무리 많은 비축분이 있어도 하루 2000만배럴의 지속적인 흐름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비상 비축유를 시장에 내놓는 일도 쉽지 않다. 비축유는 세계 곳곳의 대형 저장시설에 분산돼 있고, 저장시설에서 원유를 끌어내는 속도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 구매자를 찾고 계약을 맺고 물량을 전 세계로 옮기는 물류 절차도 필요하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이 전략비축유에서 하루에 끌어낼 수 있는 최대 물량은 440만배럴이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의 비축분도 실제 시장까지 연결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설령 호르무즈 해협의 선적이 재개되더라도 시장이 바로 정상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싱가포르 소재 원자재 데이터업체 스파르타의 준 고 분석가는 정유시설은 복잡한 공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멈췄다가 곧바로 재가동할 수 없으며, 정상 선적이 재개된 뒤에도 통상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 최소 2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유가는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된 뒤 급등했고, 이번 주 한때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다가 다시 다소 밀렸다. 그러나 시장은 이번 분쟁과 원유 공급 차질이 단기에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을 점점 더 반영하고 있다. 비축유 방출 역시 임시방편에 그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각국의 물가와 경기에도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에드워드 피시먼은 트레이더들이 그동안 이번 충돌이 단기에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도 무역 분쟁 때처럼 물러설 것으로 봤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이 군사작전 종료를 선언해도 이란이 곧바로 해협을 다시 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 해협을 다시 열 수 있는 주체는 단 하나뿐”이라며 “바로 이란”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