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 깨져도 위상은 보호된다

2026-03-14 21:25:02 게재

아주대 연구팀, 위상물리학 20년 통념 뒤집어

‘국소지지 대칭’ 이론 제시…신소재·양자소자 설계 기대

아주대 연구팀이 위상물리학에서 20여년 동안 전제로 받아들여져 온 핵심 가정을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13일 아주대에 따르면 이 대학 물리학과 임준원 교수 연구팀이 위상물리학의 새로운 보호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실제 물질에서도 구현 가능함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국소 지지 대칭과 파괴적 간섭을 통한 위상적 보호’라는 제목으로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에는 미국 프린스턴대 B. 안드레이 버네빅 교수와 건국대 이훈경 교수, 홍익대 김세중 교수 연구팀이 공동 참여했다.

위상물리학은 수학의 위상 개념을 물리학에 적용한 분야다. 물질의 모양이나 크기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기하학적 성질을 이용해 물질의 상태와 물성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도넛과 컵은 실제 모양은 다르지만 ‘구멍이 하나’라는 위상적 특성이 같기 때문에 동일한 형태로 본다.

이 분야는 2016년 노벨물리학상 연구 주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데이비드 사울레스, 덩컨 홀데인, 마이클 코스털리츠는 위상 개념을 이용해 물질의 새로운 상태를 설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연구는 전자구조 중심의 기존 물질 분류 방식을 넘어 파동함수의 위상학적 구조를 통해 물질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이 같은 연구 흐름 속에서 위상물질은 최근 20여년 동안 고체물리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로 떠올랐다. 위상물질은 표면이나 가장자리에서 전자가 손실 없이 이동하는 특성을 보여 초저전력 전자소자와 양자컴퓨터 같은 차세대 기술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위상물질의 특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물질 전체에 대칭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대칭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밴드 교차점이 사라지거나 위상적 성질이 붕괴된다고 봤다.

실제 물질에서는 불순물이나 흡착 원자, 계면 효과 등으로 대칭이 쉽게 깨진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 가능한 위상 특성이 현실 물질에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아주대 공동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물질을 두 부분으로 나눠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다. 물질의 한 영역에서는 대칭이 유지되고 다른 영역에서는 대칭이 깨진 상황을 가정해 전자 파동의 거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조건에서 전자의 블로흐 파동함수가 ‘파괴적 간섭’을 일으켜 대칭이 깨진 영역으로는 퍼지지 않고 대칭이 남아 있는 영역에만 국소적으로 머무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경우 물질 전체 차원에서는 대칭이 깨져 있어도 실제 전자 상태는 대칭이 유지된 부분만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위상적 성질과 밴드 교차점이 그대로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메커니즘을 ‘국소지지 대칭(Local Support Symmetry)’ 보호 원리로 정의하고 일반적인 이론 틀로 정리했다. 이 틀을 이용하면 위상 절연체의 Z2 위상수와 같은 위상 지표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디랙(Dirac) 점과 같은 밴드 교차가 왜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설명할 수 있다.

연구팀은 모형 계산을 통해 국소 시간반전 대칭이나 회전 대칭으로 보호되는 위상 상태와 밴드 교차점을 구현했다. 또 2차원 탄소 소재인 바이페닐렌 네트워크에 플루오린을 주기적으로 흡착시킨 구조를 예로 들어 전체 대칭이 깨진 상황에서도 특정 방향에서 디랙형 분산이 유지되는 현상을 밀도범함수이론(DFT) 계산으로 확인했다.

임준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위상적 성질이 반드시 전체 대칭에 의존한다는 기존 통념을 넘어 부분적인 대칭과 파동 간섭만으로도 안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현실적인 물질 환경에서도 위상 특성을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국소 대칭과 파동 간섭을 활용해 더 강인한 위상물질과 양자소자를 설계하는 연구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대학기초연구소사업(G-램프)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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