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 재발 ‘뇌 회로’서 찾았다
KAIST·UCSD 공동 연구팀 규명
특정 신경세포가 중독 행동 조절
마약 중독자가 약물을 끊은 뒤에도 사소한 자극에 다시 갈망을 느끼며 재발하는 현상의 원인이 특정 뇌 신경 회로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KAIST는 뇌인지과학과 백세범 석좌교수 연구팀이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임병국 교수 연구팀과 함께 마약 중독 행동을 조절하는 뇌 신경 회로의 핵심 원리를 규명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중독 재발이 전전두엽 피질(PFC)의 기능 저하 때문이라는 기존 통념과 달리 특정 억제성 신경세포의 조절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신경 신호 균형을 조절하는 파발부민 양성 억제성 신경세포(PV)에 주목했다. 이 세포는 뇌의 흥분 신호를 조절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며 중독 행동을 조절하는 핵심 요소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코카인 투여 실험을 진행해 만성 약물 노출이 전전두엽 내 신경 신호 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전두엽 억제성 신경세포의 약 60~70%를 차지하는 PV 세포가 코카인을 찾으려 할 때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약물을 찾지 않도록 훈련하는 소거 훈련을 진행하자 PV 세포 활동은 크게 줄었다. 이는 중독 행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경 회로 조절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이 PV 세포 활동을 인위적으로 억제하자 쥐의 코카인 탐색 행동은 크게 감소했다. 반대로 이 세포를 활성화하면 약물을 찾지 않도록 훈련한 이후에도 다시 약물을 찾는 행동이 이어졌다.
이러한 효과는 설탕물 같은 일반적인 보상 행동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마약 중독 행동에서만 관찰됐다. 같은 억제성 신경세포인 소마토스타틴(SOM) 세포에서는 나타나지 않아 PV 세포가 중독 행동을 선택적으로 조절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전전두엽에서 시작된 신호가 보상 회로 핵심 영역인 복측피개영역(VTA)으로 전달되며 중독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PV 신경세포는 이 경로의 신호 흐름을 조절해 도파민 신호에 영향을 주며 약물 탐색 행동을 유지하거나 억제하는 ‘조절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세범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물 중독이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특정 신경세포와 신경 회로의 조절 균형이 무너져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며 “PV 세포가 중독 행동의 게이트 역할을 한다는 발견은 정밀 표적 치료 전략 개발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UCSD 정민주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고 임병국 교수와 백세범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이끌었다. 연구 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뉴런(Neuron)’에 2월 26일 온라인 게재됐다.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 기초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