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장기화에 미중정상회담 연기
트럼프 “한달 정도 미뤄달라” … 무역휴전 연장·희토류 문제 논의 차질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중국에 한 달 정도 연기를 요청했다”면서 “중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전쟁 때문에 나는 여기(미국)에 있고 싶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군 통수권자로서 미국을 떠나 경쟁국인 중국을 방문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 내부에서조차 전쟁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설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기간 미국을 비운 사이 이란이 대규모 군사 공세를 감행할 경우 여론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만큼 중국 측도 일정 연기에 응할 가능성이 커 양국 실무선에서 새로운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중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역 갈등을 일정 부분 관리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특히 고율 관세와 맞불 관세로 이어졌던 미중 갈등이 ‘불안한 휴전’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정상회담에서 무역휴전 연장이나 경제 협력 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일정이 연기되면서 이런 논의 역시 당분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는 고율 관세 압박과 보복 조치, 부분적 합의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여 왔다.
여기에 이란 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겹치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해상 호위 참여를 중국에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다만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정상회담 연기가 호르무즈 해협 호위 참여 압박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 조정은 전쟁 전망에 대한 판단과도 맞물린다. 그는 지난 2월 말 대이란 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작전 기간을 약 4~5주 정도로 제시한 바 있다. 이대로라면 4월 초 중국 방문 전까지 주요 군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과 달리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 첫날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군사적·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버티기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이 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국제 유가 상승 압력도 커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을 약 2주 앞둔 시점에서 전쟁을 수일 내 종결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중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외교 이벤트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과의 경제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대두와 항공기 수출 확대,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완화 등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하는 대표적인 성과로 거론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벌어 이란 전쟁을 일정 수준 정리한 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