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글로벌 금융위기 뇌관으로 ‘사모 신용’ 지목
AI 거품 꺼질 경우 부도율 14~15%까지 치솟을 우려
2008년 이후 그림자 금융 2조1000억달러 자금 쏠려
글로벌 금융위기 뇌관으로 사모 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지목되고 있다. 작년 9월부터 월가 펀드런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AI 거품’이 꺼질 경우 관련 기업이 대거 받아 간 사모 대출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 등 일각에서는 AI 분야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경우 사모 신용 부도율이 14~1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간 급성장한 사모 대출 시장에는 2조10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쏠려있다.
◆월가 펀드런 공포 확산=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사모대출 펀드로부터 돈을 되찾으려는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만 블랙록·클리프워터·모건스탠리 등은 각 사가 운용하던 사모 대출 펀드의 환매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JP모건체이스는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에 집행한 사모 대출 회수가 어려워 손실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블루아울이 OBDC II 펀드 환매를 중단한 데 이어, 영국의 모기지업체 MFS까지 파산하면서 사모신용발 위기감이 글로벌로 확산하는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블랙스톤, 블랙록 등 대형 운용사들마저 대규모 환매 요청에 직면했다.
운용사별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다. 블랙스톤은 운용사 및 임직원 자금을 추가 투입하며 환매를 지급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블랙록과 클리프워터는 환매금액을 제한했다. 환매에 시달려 왔던 사모 대출 펀드들이 더는 고객에게 내줄 돈이 없다고 선언하는 모습이다.
이에 S&P500 금융지수는 6개월간 9.12% 하락했으며 블루아울(-53.69%), 아레스매니지먼트(-45.37%), 블랙스톤(-44.44%), KKR(-42.01%) 등 주요 운용사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시장전문가들은 최근 리테일 펀드에서의 환매 요청에 대한 사모펀드들의 대응 상황이 2007년 8월 있었던 파리바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연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투자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자산 가격 흐름이 2007년 중반부터 2008년 중반까지 나타났던 움직임과 불길할 정도로 유사하다”며 “이란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사모대출 부실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자산시장 전반에 위기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대출 기업의 신용등급이나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 은행으로 타격이 번질 수 있어 느슨한 사모 대출 관련 규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규제의 역설…사모대출 급성장 = 국제결제은행(BIS)가 16일 발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 대출 잔액은 10년 전 약 5000억달러에서 지난해 2조1000억달러(약 3142조원)로 급증했다.
사모 대출은 장부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림자 금융’으로도 불린다. 사모대출 시장은 2008년 이후 대형 은행들이 자본 규제 부담으로 기업대출 시장에서 물러나면서 그 빈자리를 차지하며 급성장했다. 규제 당국이 은행의 자본 확충을 요구하고 위험 대출을 엄격히 억제하자, 위험 자본은 규제의 사각지대인 비은행 금융 중개(NDFI), 즉 ‘그림자 금융’ 영역으로 대거 이동했다. 중소기업과 차입매수(LBO) 시장에 발생한 거대한 대출 공백을 대형 사모펀드들이 메우면서 사모신용은 급성장했다. 그 결과 현재 2조1000달러 수준인 글로벌 사모신용 규모는 2030년 60% 넘게 성장하여 4조달러가 넘는 거대 시장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비상장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등에 리테일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유동성 부족 사태가 겹치며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현물지급(PIK, Payment-in-Kind)’ 대출의 급증이다. 차입 기업이 당장의 현금흐름 부담을 덜기 위해 이자를 원금에 얹어 갚는 PIK 대출 비중은 2024년 1분기 4.3%에 불과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13.2%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부실이 이연되며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사모신용→기업…다층 레버리지 = 시장 전문가들은 2008년 위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위험의 구조라고 꼽았다. 과거에는 전통적 은행 시스템에 위험이 집중됐다면, 현재는 사모펀드, 보험사, 연기금, 리테일 등으로 위험이 파편화되어 분산된 구조를 띤다. 은행들이 위험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대신 NDFI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NDFI 대출 성장세는 2015년 이후 300%를 돌파했으며, 2025년 6월 기준 대출 잔액은 1조 2000억달러에 달한다. JP모건의 경우 비은행금융기관 대출이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며 그중 사모펀드 대출만 474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펀드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 은행권으로 리스크가 역류할 수 있는 경로가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이승제 iM증권 연구원은 “사모신용 자체가 은행으로부터 신용 라인을 제공받는 ‘다층적 레버리지’ 구조가 문제”라며 “최종 차입자인 기업부터 돈을 대주는 펀드까지 모든 단계가 부채로 연결되어 있어 경제 충격이 발생하면 이 고리 전체가 동시에 흔들리는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사모신용의 소프트웨어 및 테크 기업에 대한 대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문제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AI 기술의 발전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들을 기초자산으로 구성한 대출 채권의 가치 하락과 환매 요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