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 헬륨 등 원자재 시장 뒤흔드는 이란 전쟁
유가 넘어 전방위 가격 폭등
농업·제조업·반도체 직격탄
이란 전쟁이 원유를 넘어 주요 원자재 전반의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을 촉발하며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6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연료와 화학물질 부족이 농업부터 제약 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브렌트유)는 배럴당 106달러를 넘어서며 급등했지만, 문제는 원유에 그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 원유 공급의 10~15%가 묶인 가운데, 중동 지역이 담당해온 각종 산업 원자재 공급망까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이 지역은 전 세계 교역 기준 요소 비료 22%, 알루미늄 24%, 헬륨 33%, 황 45%를 공급하는 핵심 생산지다. 드론 공격과 해상 봉쇄로 수출이 막히면서 운송, 제조, 식량 생산 등 주요 산업 전반이 동시에 타격을 받고 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것은 운송용 연료 시장이다. 중동산 원유 공급이 급감하자 아시아 정유사들은 설비에 맞지 않는 대체 원유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 결과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디젤과 항공유 생산량은 감소했다. 실제로 중국·인도·일본·태국 등에서는 정제량이 5~15% 줄었다.
동시에 중동 정유시설의 수출이 사실상 멈추면서 글로벌 연료 시장은 이중 충격을 받고 있다. 선박 추적업체 보텍사에 따르면 전 세계 유조선의 약 5%에 해당하는 125척이 걸프 해역에 묶인 상태다.
이 여파로 싱가포르 등 아시아 거래 허브에서 휘발유·디젤·항공유 가격이 급등했고, 유럽 역시 공급 압박을 받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학교 폐쇄, 근무시간 단축, 연료 배급까지 시행되고 있다.
제조업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중동은 전 세계 해상 나프타 물동량의 45%를 차지하며 플라스틱 원료의 23~30%를 공급하는데, 수출 차질로 아시아 화학업체들은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계약 이행을 포기하고 있다.
의약품 생산 역시 위협받고 있다. 아스피린과 항생제 등 대부분의 약품은 석유화학 원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최대 복제약 생산국인 인도와 중국이 중동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알루미늄 시장도 급등세다. 카타르와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의 생산 차질과 수출 중단으로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알루미늄 가격은 톤당 3440달러까지 상승해 4년래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헬륨 공급도 타격을 입었다. 카타르 라스라판 시설이 가동을 멈추면서 전 세계 공급의 약 33%가 사라졌고, 대체 공급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식량이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비료 교역의 33%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전쟁 이후 요소 가격은 35% 상승했고, 황 가격도 40% 급등했다.
세계 최대 비료기업 야라의 스베인 토레 홀세터 최고경영자는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식량 공급에 ‘재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반구 파종 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농가들은 비료 가격 급등을 감수하거나 사용량을 줄이거나 재배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에 놓였다. 비료 공급이 몇 주만 늦어도 2026년 수확량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이란 전쟁은 단순한 에너지 위기를 넘어 원자재 전반의 공급망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좁은 통로에 의존한 글로벌 구조가 드러나면서, 이번 충격은 단기간에 끝나기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