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사고 피해자 위한 법인데, 두 가지 독소조항이 있다
지금도 ‘재윤이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환자안전법 제정 당시 의료계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했던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 제도’는 김재윤 어린이 골수검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환자안전법이 개정되면서 마련되었다. 이 제도는 2021년 1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재윤이는 세 살 때 대학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3년 4개월로 예정된 항암치료 일정 중 마지막 4개월만을 남겨 둔 시점에, 열이 나 입원했던 재윤이는 수면진정제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고 골수검사를 받던 중 2017년 11월 29일 사망하는 의료사고를 당했다.
당시 주치의는 사망의 직접 원인을 ‘흡인성 폐렴’으로 지목했다. 심폐소생술 도중 위액과 혈액이 기관지를 타고 폐로 들어가 폐렴이 발생해 사망했다는 설명이었다. 부모가 의료진에게 사망 원인을 묻자,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피해 청구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재윤이 부모는 의사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형사고소했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6년 뒤 형사재판에서 의사 4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민사재판에서는 청구한 손해배상액의 70%를 인정하는 승소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형사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형사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들이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사 측 과실이 70%로 인정됐음에도, 의사들은 끝내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과나 유감의 뜻도 밝히지 않았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울분, 소송비용, 장기소송, 입증책임…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현주소
재윤이 사건처럼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울분과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대다수의 의료진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과나 유감도 표명하지 않는다. 의료분쟁 조정절차나 민사재판에서도 의료과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피해자와 유가족은 결국 많은 소송 비용과 변호사 선임료를 감수하며 민사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패소하면 고액의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설령 승소하더라도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소송은 5년에서 10년까지 걸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의료과실의 존재와 환자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까지도 의료 비전문가인 피해자나 유가족이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의료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이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절차만을 남겨 두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독소조항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형사특례와 수사특례의 적용 대상이 되는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를 ‘필수의료 중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 등’으로 폭넓게 규정한 조항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인이 단순 과실로 필수의료행위 중 사망 또는 상해 의료사고를 낸 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면 검사가 공소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형사특례 조항’이다.
독소조항 ①: 형사특례와 수사특례 적용 대상인 필수의료행위 범위의 과도한 확대
개정안에서는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를 ‘필수의료 중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특례와 수사특례를 허용하는 이유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큰 고위험·고난이도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의료인의 필수의료행위 기피 현상을 해소하려는 공익적 목적에 있다.
그렇다면 그 범위는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 정도로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 또한,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를 하위법령에 위임해 쉽게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범위는 반드시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처음에는 적용 범위를 최대한 좁게 설정하고, 이후 사회적 수용성과 논의를 거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일반적으로 고위험·고난도 의료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암, 희귀난치성질환,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등까지 포함할 수 있는 의미의 ‘중증’은 필수의료행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번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응급, 외상, 분만, 소아’뿐 아니라 ‘중증’까지 포함하고 있고, 여기에 ‘등’이라는 표현까지 넣어 추가 확대의 여지까지 열어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독소조항 ②: 손해배상 조건부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의 위헌성과 문제점
개정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손해배상 조건부 검사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이다. 이 조항은 지난 정부에서도 위헌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사회적 논의를 거쳐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 특례 조항의 가장 큰 문제는 입법례 자체가 부적절하고 위헌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이 조항이 벤치마킹한 법률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다.
그러나 교통사고 영역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이미 입증책임이 전환되어 있고, 사망과 중상해는 보호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의료사고에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중상해 교통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불가 특례는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및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중상해보다 더 중한 결과인 사망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위헌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더구나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합의나 배상만으로 검사의 공소권 자체를 막는 제도는 우리 법체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법적 정의에도 어긋난다. 직종 간 형평성과 특혜 논란도 크다. 소방·경찰·군인처럼 고위험 공익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에도 허용되지 않는 형사면책 특권을 의료인에게만 부여한다면, 이는 특정 직역에 대한 과도한 특혜 및 형평성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의료과실 인정이나 충분한 설명이나 사과·유감의 뜻도 밝히지 않고 “돈이나 보험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형사면책은 의료인의 안전 확보 노력을 약화할 수 있다. 환자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사회적 풍조를 조장할 위험도 크다.
의료과실을 부인하는 의료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시민단체가 이 조항을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특례 조항은 의료인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피해 환자나 유가족과의 분쟁 해결에 성실히 나설 때 적용된다면 가장 바람직한 제도가 될 수 있다. 국회의 입법 취지도 이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이 끝까지 의료과실을 부인할 경우, 이 조항은 의료인에게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가 될 수 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에게는 최악의 제도가 될 수 있다.
앞서 본 재윤이 사건에 이 조항을 적용해 보면 그 문제점이 더 분명해진다. 재윤이 사망사건에서 의사들은 처음부터 의료과실을 부인했다. 따라서 사과나 유감 표명 대신 “법대로 하라”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유족은 울분을 삼키며 진실 규명을 위해 형사고소와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의료분쟁 조정신청도 가능하겠지만, 의사가 자신의 의료과실을 부인하는 이상 조정이 성립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유족은 민사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재윤이 부모가 7년 뒤 민사재판에서 70% 승소 판결을 받았더라도, 그때 의사들이 손해배상금 전액을 지급하면 형사처벌은 면제된다.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고, 유족에게 사과나 유감의 뜻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이 제도가 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최악의 제도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해당 의료사고가 필수의료행위이면서 단순 과실이라고 판단하면, 의료인이 형사재판과 형사처벌의 위험을 피하고자 피해자나 유가족이 원하는 수준의 손해배상금을 기준으로 서둘러 조정을 성립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신속하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의료인은 검사가 기소해 형사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실제 기소와 재판은 정부나 국회의 예상처럼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조정이 진행 중이거나, 조정이 불성립되어 민사재판으로 넘어간 사건이라 하더라도 결국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손해배상액은 정해진다. 그런데 검사가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기소해 형사재판이 진행되다가, 이후 조정이 성립하거나 민사재판 결과에 따라 의료인이 손해배상을 하면 결국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게 된다. 먼저 형사재판을 해 놓고 나중에 손해배상 때문에 형사처벌이 사라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공소를 제기한 검사는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기소를 하게 된다. 형사재판에 참여한 공판 검사도 불필요한 유죄 입증 활동을 하게 된다. 법원 역시 결국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사건에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게 된다. 이 제도는 의료사고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행정력과 사법 자원을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손해배상금이냐, 형사처벌이냐’의 가혹한 선택
이러한 이유로 검사는 단순 과실이 있는 의료인에 대한 기소를 민사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실상 미룰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의료과실을 부인하는 해당 의료인을 용서할 수 없어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면, 형사재판 3심이 끝날 때까지 수년 동안 손해배상도 받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한다. 결국 손해배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을 포기해야 하고, 형사처벌을 원하면 손해배상금을 미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손해배상 조건부 검사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은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손해배상금이냐, 형사처벌이냐’라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또한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단순 과실’이라고 판단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의료과실을 부인하는 의료인의 경우에는 손해배상금 지급을 미루면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다투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이 특례 조항이 초래할 불이익 역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피해자의 납득 없는 형사면책은 정의롭지 않다
‘손해배상 조건부 검사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의사가 자신의 과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사과나 유감도 표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법원이 의료과실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손해배상만으로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된다는 구조다.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를 논의하려면, 최소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의사가 제도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형사처벌 면제 특례는 의료인을 위한 보호장치이기 전에, 먼저 피해자와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진심 어린 사과도 없고, 과실 인정도 없는데, 돈만 지급하면 형사책임까지 면제되는 제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정의롭지 않다. 따라서 조만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필수의료행위 범위를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로 한정하고,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는 ‘손해배상 조건부 검사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