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일자리 직업훈련
AI 시대, 일자리 증감 …‘노동시장 제도’에 달렸다
한국과 유럽 고용효과 엇갈려 … 독일식 직업훈련, 직무능력 향상으로 일자리 보호
최근 미국-이란 전쟁을 둘러싼 세계 정세는 인공지능(AI) 활용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AI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의 연구에 따르면 AI는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고용 효과는 기술 자체보다 노동시장 제도와 숙련 형성 체계에 크게 좌우된다.
독일처럼 기업 현장과 연계된 직업훈련과 직무 중심 노동시장을 갖춘 국가에서는 기술 변화가 일자리 감소보다 직무전환과 새로운 숙련 직무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재교육 기회와 직무이동이 제한된 노동시장에서는 자동화가 곧바로 일자리 감소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기술 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다른 직무로 이동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줄일지, 새로운 고용을 만들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최근 연구들은 AI가 고용을 늘리느냐 줄이느냐가 기술 자체보다 노동시장 제도와 숙련 형성 체계에 크게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 한국은행 등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IMF는 2024년 보고서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에서 전세계 일자리의 약 40%가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선진국에서는 그 비율이 60%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IMF는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AI가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OECD 역시 2025년 보고서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인공지능’에서 현재까지 OECD 국가에서 AI로 인해 총고용이 감소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에서는 새로운 업무가 생겨나고 고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사례가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별 상황은 차이가 분명하다. 2025년 한국은행과 IMF가 공동으로 분석한 연구 ‘AI와 한국경제’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상당수가 AI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직무에 속한다. 특히 회계·사무직과 일부 IT 시스템 관리 직무는 자동화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경험이 적을수록 AI 대체가능성이 커 대졸 청년층 고용에 불리하다. 반면 유럽에서는 다른 흐름도 관찰된다. 2026년 3월 유럽중앙은행이 약 5000개 유로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AI 도입 초기에 인력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추가 채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술 변화에 맞춰 직업을 다시 설계 =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직업훈련이다. 오랫동안 이원화된 직업훈련 제도를 유지해 온 독일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제도에서는 청년들이 기업에서 실제 직무를 훈련하는 동시에 직업학교에서 이론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기업·직업학교·상공회의소가 함께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한다. 이를 통해 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을 교육과정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 2024·2025년 공식 직업훈련 직종의 수는 327개, 기업은 49만4000개 직업훈련을 제공했고 44만4000명의 훈련 지원자에게 훈련 자리가 알선되었다.
독일의 이원화된 직업훈련제도의 특징은 기술 변화에 맞춰 직업 자체를 새롭게 설계한다는 점이다. 독일은 디지털화와 자동화에 대응해 2021년 ‘건물 시스템 통합 전자기술자’ 직종을 도입했다. 2023년에는 가상현실·증강현실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몰입형 미디어 디자이너’ 직종을 신설했다. 기술 변화가 나타날 때 기존 직업의 직무를 신기술에 맞춰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직무로 구성된 직업을 만든다.
독일 경제의 핵심은 이른바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중소·중견 제조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AI를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생산공정의 효율화와 새로운 제품·서비스 개발에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산업용 기계를 만드는 기업들은 센서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장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는 유지보수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AI는 데이터 분석가나 공정 엔지니어 같은 숙련 인력 수요를 늘리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낸다. 기술 변화가 기존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기보다 새로운 직무로 전환되는 추세가 나타난다.
◆신기술 배우고 노동시장 참여기회의 문제 = 이와 달리 한국의 직업훈련 체계는 기업 현장과의 연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채용구조는 학력 중심으로 고착돼 있어 대학 졸업자들이 대기업과 공공기관 사무직에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직무 기반 숙련체계는 미약하고 직업훈련 역시 기업 현장과 긴밀히 연결되기보다는 교육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술 변화가 닥칠 때 노동자가 다른 직무로 이동하기보다 기존 직무 자체가 사라져 일자리를 상실하는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AI가 일자리를 없애는가’가 아니다. 어떤 제도 속에서 기술이 도입되는가가 고용의 결과를 좌우한다. 직무중심 노동시장이 구축된 국가에서는 일부 업무가 사라지더라도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다른 연계 직무로 이동할 수 있다. 그 결과 자동화는 실업보다 직무전환을 촉진하며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재교육 기회가 부족하고 직무이동이 어려운 노동시장에서는 자동화가 곧바로 일자리 감소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기술 발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최근의 세계 정세는 AI와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현장과 연계된 직업훈련과 평생 재교육, 직무전환을 지원하는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업 변화에 맞춰 새로운 직무를 설계하고 필요한 기술을 양성하는 정책 역시 중요하다. 결국 AI가 일자리를 줄일지 늘릴지는 아직 확정된 미래가 아니다. 결국 AI 시대 고용의 향방은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