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나면 속수무책…하지만 대비는 없었다
대전 공장화재 현장감식·압수수색
확산 속도·불법 복층 등 의혹 산적
대전 대덕구 문평동 안전공업 화재로 사망 14명, 중상 25명, 경상 35명 등 모두 74명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소방·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23일 오전 안전공업 화재현장에서 1차 합동감식을 시작했다. 유족대표 2명도 참여했다. 경찰 등은 구체적인 발화지점과 화재원인 등을 들여다 봤다. 앞서 22일 이들은 안전대책과 화재감식 방향 등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현장을 살펴봤다.
경찰 등 당국이 풀어야 할 의혹은 산적해 있다. 공장 화재 수준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우선 너무나 빨랐던 화재 확산 속도다. 화재 발생 당시 찍힌 영상들을 종합하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2분여만에 연기가 공장 전체를 뒤덮었다. 이 때문에 희생자들이 당시 낮시간대임에도 공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일단 가공공정에서 발생한 절삭유 등의 기름 찌꺼기에 주목하고 있다. 기름때가 공장 곳곳에 누적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공장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절삭유 증기를 고발하는 전 직원들의 증언도 있다.
황병근 안전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은 22일 “노조는 그간 사측에 환경시설과 집진시설의 화재 위험성에 대해 개선을 요구해 왔다”며 “특히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 등이 축적되는 것을 우려해 집진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청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화재원인과 함께 집중적인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가장 많은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5층의 복층 구조도 풀어야 할 의혹이다. 당시 휴게시설 등으로 사용됐던 복층은 대덕구청이 공개한 건축허가 당시 도면에는 없는 불법 구조물이다. 앞면에는 창문이 없지만 측면에는 창문이 있다.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이유를 현장조사 등을 통해 밝혀야 한다. 현재 수사당국은 이 공간이 불법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구조를 알지 못한다. 다만 소방당국은 너무 빠르게 번진 불길 때문에 이들이 순식간에 고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 구조물이 만들어진 과정도 수사대상이다.
복층 9명 사망자와 2층 물탱크 부근에서 발견된 3명의 사망자는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에 대비한 대피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거나 직원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큰 의문점은 위험물질을 다루고 화재위험이 높은 공장이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점이다.
안전공업은 화재 당시에 101㎏에 달하는 나트륨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트륨은 물과 반응하면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이 때문에 화재 초기 소방당국이 물을 뿌리지 못했고 나트륨을 이송한 후에야 본격적인 화재진압이 가능했다.
공장 안에도 마찬가지다. 안전공업 공장 내부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고 옥내 소화전만 있었다. 공장 내부에 큰 불이 나면 사실상 속수무책인 구조다.
대전경찰청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23일 오전 안전공업 본사와 공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경찰 등은 철저한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고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모든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히 수사해 이번 사고의 발생원인과 책임자가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당국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노동청 관계자는 “안전조치의무 책임 소재 등을 명확히 밝히고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엄정하게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지역에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2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대전시는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사후조치를 즉각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 문평동 안전공업 화재는 지난 20일 오후 1시17분 발생해 이날 오후 11시48분 꺼졌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