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렬의 중동 톺아보기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보여주는 미중 대립의 새 문법

2026-03-26 13:00:07 게재

요즘 워싱턴과 예루살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뒷얘기는 대체로 ‘개인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럼프가 국내 정치의 부담을 덮기 위해 외부충격을 택했다거나, 네타냐후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는 식이다.

정치가 인간의 약점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몇몇 개인사의 조합만으로 중동전쟁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의 뼈대는 훨씬 구조적이며, 핵심은 미국의 전략문서가 제시한 대외인식과 행동양식이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가에 있다.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과 국가방위전략(NDS)과 같은 문서들이 보여주는 방향은 선명하다. 중국을 경쟁의 중심축으로 놓고 경제와 기술, 공급망, 금융과 물류를 안보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서들을 개별 군사행동의 직접 설계도로 읽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이 각각의 사태를 어떤 큰 틀 속에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보는 일이다. 미국은 더 이상 경쟁을 군사 영역에만 가두지 않는다. 상업적 연결과 산업 인프라, 에너지와 해상 교통, 항만과 케이블, 제재와 금융 네트워크까지 모두 경쟁의 전장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 금융까지 미중경쟁 확장

지난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사건에서 중요한 대목은 NDS가 이 작전을 몬로 독트린의 트럼프식 확장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서반구를 미국의 전략공간으로 재규정하고 그 안에서 항만과 자원, 에너지와 금융을 둘러싼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남미에서 중국이 구축해 온 교두보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얹는 과정이었다. 미국이 모든 사태를 중국 견제를 위해 사전에 기획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핵심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개입을 사후적으로 대중국 전략 속에 편입시키고, 그 결과를 전략적 성과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해외 자산을 겨냥한 압박도 같은 맥락이다. 파나마 운하 항만, 칠레 해저 케이블, 페루 심해 항만을 둘러싼 압박은 중국의 상업 자산이 안보 자산으로 재분류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중동전쟁도 같은 맥락에 있다. 미국이 처음부터 중국 견제를 주목적으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결과가 중국의 에너지 조달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만큼 워싱턴이 이를 미중 경쟁의 한 전선으로 포섭해 해석할 유인은 충분하다. NDS가 베네수엘라 작전을 대중국 전략과 직결된 서반구 구상으로 편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란은 중국이 제재를 우회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원유를 조달해 온 중요한 공급처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걸프산 원유와 LNG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로 향하고 중국 역시 그 구조에 깊이 연결돼 있다. 그렇다고 전쟁으로 인해 중국이 곧바로 에너지 마비에 빠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호르무즈 리스크는 할인된 이란산 원유의 상실과 조달 비용 상승을 통해 중국에 점진적 압박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보면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같은 사례가 아니다. 베네수엘라가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공간 재편과 중국의 영향력 축소의 사례라면 이란은 전쟁의 결과가 사후적으로 미중 경쟁의 틀 속에 흡수되는 사례다.

두 사안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는 전략이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너지 공급선과 항만, 물류 인프라와 금융 연결망, 제재 집행과 군사적 억제가 서로 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전략적 연속선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베네수엘라와 이란문제 한국으로 이어져

문제는 이 문법이 남미와 중동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는 경쟁 공간을 에너지와 항만, 물류와 금융, 제재와 군사 억제까지 하나의 연속선으로 묶어 읽기 시작했다면 동맹국의 기지와 영공, 항만과 정보 자산 역시 그 바깥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사례는 한국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은 단지 한반도 방어의 현장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의 대중 압박 작전망 속에 기능적으로 편입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8일 전후 서해에서 전개된 주한미 공군의 대규모 훈련 역시 이러한 문법으로 읽어야 한다. 오산에서 출격한 F-16 편대가 서해 공해상에서 중국 전투기와 대치한 사건은 한반도 방어라는 익숙한 명분 뒤에 중국 억제라는 가려진 목적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작전 편의 차원에서 볼 수 없다. 한번 한반도 밖 작전에 한국의 기지와 자산이 활용되기 시작하면 이후의 위기에서는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대가 한국을 미국 작전망의 일부로 간주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어디까지 연루될 것인가를 가르는 원칙의 문제다.

미중 대치로 한국에 가장 민감한 문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어에만 고정하지 않고 더 넓은 지역 작전에 활용하려는 발상은 구조적으로 한국을 미중경쟁의 작전망 속에 깊이 끌어들일 가능성을 내포한다.

한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의 말처럼 거대한 ‘항공모함’으로서 미군의 발진기지가 되고, 중국의 공격을 받는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 운명에 처한다. 사드로 인해 한중 관계가 오랜 기간 경색되어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유연성 문제는 훨씬 파괴력이 강력하다. 우리의 외교 공간은 급속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동맹을 유지하더라도 한반도 방어와 직접 관련 없는 대외작전에 한국이 자동으로 연루되지 않는다는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주한미군만 대만해협으로 출동하더라도 그것은 한국이 자동 연루되는 것이다. 이란이 걸프 지역 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동맹을 파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동맹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 설정이다. ‘동맹파’는 원칙 없는 거부만을 고집하면 동맹의 신뢰가 무너진다고 주장하겠지만 이 문제는 거부가 정답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중의 펀치 대신 맞지 않도록 관리

조만간 열릴 미중 정상회담은 서로의 레드라인을 놓고 벌이는 거대한 담판이다. 양국의 경제 책임자들이 지난주 파리에서 만나 의제를 조율했고 정상회담의 겉모습은 무역과 투자일지 몰라도, 그 이면의 핵심 의제는 충돌을 어디까지 관리할 것인가에 맞춰질 전망이다. 대만과 남중국해, 인태 지역의 미사일 전개, 그리고 이란과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의 에너지 환경이 테이블 위아래에서 첨예하게 부딪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전략적 대응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째, 군사적으로 한반도 억제력을 우리 스스로 더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작권은 조기에 회수해야 한다. 둘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국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고 한중 관계를 오염시키며 남북 관계를 가로막는 선택을 왜 해야 하는가. 셋째, 외교적으로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한반도 문제를 외부 강대국의 전략 계산에만 맡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외교 공간과 선택지를 넓히는 현실적 수단이다.

우리의 외교적 과제는 선택을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자체를 늘리는 데 있다. 에너지는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조달선을 더욱 다변화해야 하며, 공급망 역시 중국과의 현실적 연결을 인정하되 핵심 품목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체 경로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동맹 또한 단순한 가치의 공유를 넘어 철저한 이익의 논리로 설계해야 한다. 미중이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펀치를 우리가 대신 맞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그것이 현재 한국 외교가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다.

전직 외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