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식도 채권도 다 무너졌다
중동전쟁발 고유가 충격 ‘숨을 곳 없는 시장’ … 인플레 공포에 전통 투자전략 붕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 충격이 금융시장 전반에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이 피난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이번 유가 충격은 역사적으로도 큰 수준에 속하며, 이는 경기 둔화 우려와 함께 주식시장 하락을 이끌었다. 실제 주요 주가지수는 지난해 8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채권이다. 통상 주식시장이 불안해지면 자금이 몰리는 채권 시장도 이번에는 방어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금리가 오르고 채권 가격이 급락했다. WSJ는 “채권은 시장 혼란기 안전자산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완충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쟁 이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약 0.5%p 상승했고, 30년 모기지 금리는 6.38%까지 뛰며 실물경제 전반의 금융비용을 끌어올렸다.
시장 구조적으로도 충격이 확대되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레버리지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채권을 매도하고, 다른 투자자들도 추가 하락을 우려해 매수에 나서지 않으면서 하락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털마켓의 금리 전략가 아이작 브룩은 “최근 몇 주간 이 흐름에 반대로 베팅하면 계속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은 전쟁이 경기 둔화를 불러와 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채권에 낙관적이었다. 실제 전쟁 직전까지 시장은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약 80%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가 급등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채권은 안전자산으로서 상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급락세로 돌아섰다.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도 18일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공급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언급해, 물가 대응이 정책의 핵심 변수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흐름은 전통적인 자산배분 전략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주식 60%, 채권 40%로 구성된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도 전쟁 이후 약 6.3% 손실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글로벌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급락하며 “투자자들에게 숨을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며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WSJ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채권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FT 역시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주식과 채권 모두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오히려 경기 둔화가 심화되며 금리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미국 자산운용사 캐피털그룹의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 리치 투아존은 “지상전이 확대되면 글로벌 성장 둔화로 이어져 채권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매도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시장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라는 상충된 힘 사이에서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변동성만 확대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러한 구조적 불안은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