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버텨온 이란 전시경제, 이번에도 버틸까
자립형 버티기 모델 구축
핵심 인프라 타격땐 위험
이란이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저항 경제’ 체제가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군사시설뿐 아니라 연료 저장시설, 가스 단지, 은행 등 핵심 인프라까지 연쇄 타격하면서 이란 경제는 이미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철강 공장 등 산업시설 피해도 확인됐다. 하지만 외부 충격을 견디도록 짜인 이란식 전시 경제 구조가 아직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고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했다.
이란의 저항 경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뿌리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과 서방의 제재 체제에 대응해 경제를 자립형으로 바꿔온 데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여기에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경험이 더해지면서, 국가 기반시설을 한곳에 몰아두지 않고 분산시키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전국에 발전소를 흩어 배치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전력망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서방 금융망이 막히자 원유와 식량·기계를 맞바꾸는 물물교환식 우회 무역도 발달했다.
핵심은 이란 경제가 원유 하나에만 기대는 단선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란은 제재와 전쟁에 버티기 위해 의약품,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등 수입이 막힌 품목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해 왔다. 팔레비 왕조 통치기인 1960~1970년대부터 축적된 산업화 기반도 이런 버티기의 토대가 됐다. 분석가들은 이란은 다른 걸프 산유국들과 달리 제조업 기반이 비교적 두텁고, 필요할 경우 수입품을 국내 생산으로 돌릴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쟁 전부터 이란 경제는 미국 제재 강화와 내부 실정이 겹치며 이미 깊은 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40%를 넘었고 생활수준은 급락했다. 경제난은 반정권 민심 악화의 핵심 배경이었다. 그런데도 당국은 지방정부에 수입 권한을 넘기고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비상체제로 대응해 왔다.
호르무즈 해협 기능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도 육로 무역은 이어지고 있고, 마트 진열대와 신선식품 공급도 아직은 유지되고 있다. 휘발유 배급제를 통해 단기적 연료 부족도 통제하고 있다.
이란 경제의 또 다른 버팀목은 비석유 수출이다. 철강, 금속, 화학제품, 식품 등으로 월 20억달러 안팎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도 역설적으로 완충재가 되고 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면서, 원유 수출로 이란이 거둬들이는 외화도 늘었다. 역설적으로 유가 상승이 전쟁 비용의 일부를 상쇄하는 완충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 차질은 다른 측면에서 이란을 취약하게 만든다. 이란 당국은 국내 식량의 약 80%를 자급한다고 말하지만, 밀과 식용유 원료 작물, 쌀 일부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가축 사료용 대두, 옥수수, 기타 곡물 의존도도 높다. 상당수 물류가 UAE를 거치는 만큼 해상 운송 차질이 길어지면 병목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저항 경제가 단기 생존에는 효과를 낼 수 있어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발전소 등 민간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되면 더 깊은 경제 위기와 장기 후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란 경제의 강점은 버티는 힘이지, 전쟁 속에서 성장하는 힘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