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외주화 확산…조직범죄로 첫 대응
강경 수사 착수했지만 처벌은 여전히 개별 수준 … 상선 추적 어려운 구조, 법 적용 공백
보복도 돈을 주고 맡기는 시대가 됐지만, 처벌은 여전히 ‘재물손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범죄는 조직화됐지만 처벌은 개인 행위에 머무르는 구조적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최근 경찰이 이를 조직범죄로 규정하고 강경 수사에 나서고 대통령실도 대응을 지시하면서 정부 기조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적발된 보복 대행 범죄는 대부분 주거침입, 재물손괴, 협박 등 개별 혐의가 적용됐다. 피해자 주거지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래커칠을 하고 협박성 유인물을 살포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지만, 범행 구조 전체가 아닌 개별 행위로 쪼개져 처벌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형 범죄로 진화한 보복 = 범행 방식은 이미 ‘플랫폼 범죄’로 진화했다. 텔레그램 등 익명 채널을 통해 의뢰와 실행이 연결되고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원한을 대신 풀어준다’는 게시글이 쉽게 검색되고 이미지 훼손이나 협박, 사고 위장 등 범죄 행위가 일종의 서비스처럼 거래된다.
경기남부지역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평택·수원·화성·안산 등에서 15건이 확인됐고 관련자 23명이 검거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유사 사건이 이어지면서 범죄가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범죄 실행 구조도 분업화됐다. 의뢰자는 익명으로 범행을 주문하고, 중간 연결책은 실행자를 모집한다. 실행자는 건당 60만~80만원을 받고 범행을 수행한다. 개인정보 제공책과 실행자, 총책이 분리된 구조로 운영되며 일부 사건에서는 배달앱 협력사에 위장 취업해 개인정보를 빼내고 금전 대가를 받은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이러한 구조가 ‘박사방’ 사건과 유사한 조직형 범죄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보복 대행 범죄는 단순한 개별 범죄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플랫폼형 범죄’로 평가된다. 범죄가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기존 범죄와 성격이 다르다. 특정 인물이 빠져도 다른 참여자가 대체되면서 범죄가 계속 재생산되는 특징을 보인다.
◆거래 구조로 고착된 범죄 = 특히 금전 대가가 형성되면서 범죄는 거래 형태로 고착된다. 의뢰자와 실행자가 맞물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범죄는 개인 일탈이 아니라 시장처럼 작동하게 되고, 참여 장벽도 낮아진다. 이 경우 범죄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로 전환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단속만으로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적 특성에 주목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 범죄는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로 작동하면서 참여자만 바뀌며 계속 재생산되는 특징이 있다”며 “플랫폼 기반 연결 구조가 형성되면 단속만으로 확산을 막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금전 대가가 형성되면서 보복 행위가 거래 형태로 고착되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면 범죄가 개인 일탈이 아니라 시장처럼 작동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법 적용의 한계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는 형사사건과 관련된 보복에만 적용된다. 개인적 원한을 기반으로 한 보복 대행 범죄에는 적용이 어려워,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행도 개별 범죄 수준으로 처리된다.
특히 의뢰자와 실행자가 분리된 구조 속에서 상선을 특정하지 못하면 실행자만 처벌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주거침입이나 재물손괴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만 적용돼 범죄의 실질적 책임 구조가 반영되지 않는다. 텔레그램 대화방 삭제 등으로 범행 교사 정황을 입증하기 어려워 상선 추적이 막히는 점도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범정부차원 제도 정비 필요 =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대응 기류는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경찰은 보복 대행 범죄를 단순 사건이 아닌 조직형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보복 대행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조직원들을 구속 송치하고, 전담팀을 구성해 의뢰자와 상선까지 추적하고 있다.
이는 범죄를 개별 행위가 아닌 조직 범죄로 보고 중형 적용이 가능한 혐의를 적극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응 방식의 전환으로 평가된다. 경찰은 사이버수사 인력을 투입해 텔레그램 기반 범죄를 집중 추적하고, 개인정보 유출 경로와 자금 흐름까지 동시에 파악하는 방식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청와대도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보복 대행은 사회 전반의 불안을 조장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적극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 강화와 대통령실의 공개 지시가 맞물리면서 보복 대행 범죄 대응은 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 단계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1회성 강경대응이 아니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직형 보복 범죄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을 마련하고, 함정수사 도입 등 사전 적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한 범죄 중개 행위와 개인정보 유출 경로에 대한 규제 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보복 대행 범죄는 범죄의 진화 속도를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범죄는 구조로 진화했지만 대응은 여전히 개별 행위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사적 보복이 ‘서비스’로 거래되는 단계까지 확산된 상황에서, 현행 체계로는 억지력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