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조디아제핀 처방 8억개 넘어

2026-04-07 13:00:06 게재

4년째 증가…불안·불면 치료제

관리 사각지대 속 범죄에 악용

불면증 치료제와 항불안제로 쓰이는 벤조디아제핀계 약품 처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처방량은 8억개를 넘어섰지만 관리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법 약물이 범죄 도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약물 관리 공백’이 새로운 사회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알프라졸람·로라제팜 등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처방량은 지난해 8억6335만개로 집계됐다. 2021년 8억988만개에서 4년간 5347만개(6.6%) 증가했다.

벤조디아제핀은 불안·불면 치료에 널리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의료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지만 의존성과 내성 위험이 있고, 중추신경을 억제해 판단력과 반응 속도를 떨어뜨리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특성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생한 ‘강북 모텔 약물 연쇄살인 사건’에서는 피의자가 음료에 약물을 섞어 피해자의 의식을 잃게 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몸에서는 벤조디아제핀을 비롯해 항우울제 등 여러 약물이 다량 검출됐다.

이 약물은 약물운전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벤조디아제핀 계열 성분은 졸피뎀 등과 함께 최근 3년간 적발된 약물운전자에게서 빈번하게 검출됐다.

이처럼 벤조디아제핀은 의료용 약물이면서 동시에 범죄와 사고의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는 이중적 성격을 보인다. 특히 처방을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만큼 접근성이 높아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기존 마약류와 달리 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불법 마약은 유통 자체가 통제되지만, 벤조디아제핀은 의료 목적 처방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급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에서 범죄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고 본다. 약물을 구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합법 약물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피하기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실제 범죄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다. 음료나 음식에 혼합하는 방식은 외관상 구별이 어렵고, 피해자는 약물 투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약물 효과는 개인별 차이가 커 위험성을 사전에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양을 복용해도 반응 정도가 달라 사고나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관리의 어려움을 키운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여전히 ‘처방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물의 실제 사용과 오남용, 범죄 활용 가능성까지 반영한 관리 체계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미화 의원은 “벤조디아제핀 처방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 오남용을 넘어 범죄 악용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응 방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처방량 관리뿐 아니라 약물별 위험성에 따른 사용 기준과 복용 후 운전 제한, 범죄 악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 체계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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