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에어건 중상…‘이중 종속’ 드러나

2026-04-08 13:00:01 게재

체류에 묶이고 고용에 묶이고…정부 전면 조사 착수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폭력에 노출돼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경기 화성의 한 제조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고압 공기를 분사해 중상을 입힌 사건을 계기로, 고용과 체류가 결합된 ‘이중 종속 구조’가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7일 화성시 향남읍 한 도금업체에서 발생한 상해 사건과 관련해 수사전담팀을 구성하고 피해자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병원 진단과 현장 확인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확인한 뒤 업체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2월 작업 중이던 태국 출신 노동자 A씨에게 업체 대표가 에어건을 이용해 고압 공기를 직접 분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인체에 직접 사용됐다는 점에서 단순 사고가 아닌 고의적 위해 행위 가능성이 제기된다. A씨는 복부가 급격히 팽창하고 장기 손상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수사 쟁점은 ‘고의성’과 ‘행위 위험성’이다. 고압 공기 분사는 인체 내부 장기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통상적인 작업 행위로 보기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상해를 넘어 중상해 적용 여부까지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쟁점은 사고 이후 대응이다. A씨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았고, 입원 대신 본국 귀국을 종용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산업재해 은폐 시도와 책임 회피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사고 이후 통제’ 관행이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는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뒤 비자 만료 이후 현재 불법체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신분은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체류 자격이 고용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구조에서는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신고나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이중 종속 구조’로 보고 있다. 고용 관계에 더해 체류 문제까지 사업주 영향권에 놓이는 구조에서는 폭행이나 괴롭힘이 발생해도 외부로 드러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체불이나 안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일을 지속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정부는 사건을 계기로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경찰 수사와 별도로 해당 사업장에 대한 합동 감독에 착수했다. 폭행,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단일 사건 대응을 넘어 사업장 전반의 관리 실태를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법무부도 출입국·외국인 정책 기능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에게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동시에 해당 사업주의 불법 고용 여부 등 출입국관리법 위반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경찰과 노동부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다친 이주노동자가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국내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관계 부처의 적극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보호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산업현장의 안전 문제를 넘어 고용허가제 운영 방식, 체류자격과 노동권의 연계 구조, 산재 처리 과정의 보호 장치 등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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