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하자며 기술탈취 그리고 소송전…중소기업은 폐업
재단법인 경청, 기술탈취 피해중소기업 간담회
엔이씨파워·씨디에스글로벌·티오더·씨지아이 호소
대기업들 “기술탈취·지식재산 도용 아냐” 반박
“기술은 협력의 이름으로 제공됐고 사업은 배제 방식으로 돌아왔습니다.”(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
“특허법원 결과에도 대형로펌 앞세워 시간끌기로 일관해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고 창업자는 눈을 감았습니다.”(씨디에스글로벌의 창업주 딸 김찬미 변리사)
“정당한 이유 없이 협상을 결렬시킨 후 유사한 기술과 동일한 공정으로 제품을 생산했습니다.”(조영수 씨지아이 대표)
“대기업의 자본력과 인프라를 동원해 시장에서 고의로 배제하고 있습니다.”(권성택 티오더 대표)
기대했던 상생협력은 고통으로 돌아왔다. 환한 미소와 악수 뒤에 칼이 숨겨져 있었다. 항의하자 대기업은 법대로 하잔다. 대형로펌을 앞세운 기나긴 소송전에 맞서고 있다.
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술탈취 피해를 주장하는 중소기업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씨지아이(CGI) 엔이씨파워 티오더 씨디에스글로벌이다.
◆공동개발 약속믿고 핵심자료 제공 = 엔이씨파워는 SK에코플랜트와 기술탈취 분쟁을 겪고 있다.
엔이씨는 환경기술 전문기업이다. 15년간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다. 소각로 인공지능(AI) 자동운전 최적화기술(AI-epRASIM 10)이 핵심자산이다. 이 기술은 감정평가원으로부터 102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1년 AI-epRASIM 10은 환경부가 주관한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사업’에 성남시와 함께 제안해 당선됐다.
엔이씨에 따르면 SK에코의 만남은 2021년이다. 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는 “SK가 자회사 13곳을 포함한 사업확대와 수의계약을 약속하며 협력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엔이씨는 SK에코와 ’친환경 소각로 운영 최적화설루션‘ 개발을 위한 기술검증(PoC)에 착수했다. 엔이씨는 기술구조와 설계도 등 핵심자료를 온전히 제공했다.
그러나 PoC가 끝난 뒤 상황은 달라졌다. SK에코는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경영상태를 이유로 정식계약 체결을 거절했다
문제는 1년 후였다. SK에코는 1년만에 엔이씨의 핵심기술과 유사한 특허 4건을 출원했다. 2023년 5월에는 자체개발설루션 ‘ZERO4 WTE’를 발표하고 상용화했다.
엔이씨는 항의했다. 심 대표는 “이 기술은 오랜기간 축적한 기술과 알고리즘이 필요하다”며 “협력과정에서 제공된 핵심 아이디어가 정당한 계약없이 사업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SK에코는 지적재산권 도용 사실을 부정했다.
◆경영권인수 약속 후 돌변 = 기술벤처기업 씨지아이(CGI)는 환화솔루션과 소송 중이다.
CGI는 2017년 삼성전자와 레이저 접합방식을 활용한 모바일용 초박판 베이퍼챔버 공동개발(4년 총 6개 모델)에 착수했다. 2019년 노트10, 노트20, Z플립, S22, S21FE 등의 초박판 베이퍼챔버 양산개발에 성공했다.
CGI측에 따르면 2021년 한화솔루션은 CGI 경영권 인수를 구두제안 했다. 그해 400억원 매각가를 제시하며 한화 최고경영층 보고를 완료한 후 실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한화솔루션은 비밀준수계약서를 체결하고 5월 CGI는 인수의향서를 접수했다. 장세영 부사장 등 실사단이 CGI를 방문해 만났다. 20회차 이상 광범위한 서면 질의응답이 오고갔다.
조영수 CGI 대표는 “CGI는 과거 협력관계였던 인물이 M&A를 제시해 신뢰하고 진행시켰다”며 “핵심기술 정보와 내밀정보가 담긴 자료들을 기술실사 과정에서 전부 제공했다”고 전했다. 8월 한화측 태도가 돌변했다. 한화측이 매각가 200억원을 제시했다. 최종 매각가에서 합의를 하지 못해 인수논의는 결렬됐다.
분쟁은 2022년 2월 발생했다. 한화솔루션이 한화NxMD를 설립해 CGI와 유사한 기술의 사업을 시작했다. CGI는 한화솔루션을 독보적 제조기술과 공정을 무단사용한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조 대표는 “지난해 공정위 조사, 국회국정조사 청문회, 중소기업벤처부 자체조사에서 한화솔루션의 부당행위 정황이 확인됐는데도 대형로펌을 앞세워 수사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화솔루션은 “협상결렬 후 CGI 기술과 전혀 다른 업계내 이미 공개된 양산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자문을 받아 자체기술을 개발했다”고 반박했다.
◆기반망 지위 남용해 사업방해 = 티오더는 KT와 갈등 중이다. 티오더는 2019년1월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태블릿 국내 테이블오더 시장점유율 65%를 보유한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태블릿 20만대 보급을 목전이다.
티오더에 따르면 KT는 2022년 4월 티오더에 사업협력을 제안했다. KT 전략투자팀과 수차례 회의에서 사업계획 영업전략 기술구조 등 핵심 정보를 공유했다. 2023년 4월 KT는 기밀유지협약(NDA) 체결 논의단계에서 일방적으로 협력을 종결했다.
1개월 후 KT는 테이블오더서비스 ‘하이오더’를 출시했다. 권성택 티오더 대표는 “하이오더는 티오더의 비즈니스 구조, 서비스 UI와 동일하거나 유사했다”고 말했다.
하이오더 출시 이후 2025년 1월에도 KT 고위임원은 권성택 티오더 대표에게 인수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권 대표는 “KT는 티오더 매장에 인터넷 연결회선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거나 티오더에 대한 음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간망 사업자로서 지위를 남용해 티오더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며 하이오더로의 교체를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KT는 “실사인수 타당성이 낮다고 판단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관련 자료는 모두 폐기했다”고 해명했다.
◆2심법원에서 지고도 소송전 = 씨디에스글로벌은 2001년 설립된 열처리 비 제조전문기업이다. 독자개발한 ‘완전연소기술’이 핵심기술이다. 이 기술은 보조장치나 보조연료 없이 공기의 고속회전에 의한 원심분리원리를 이용해 고온·고속으로 가연성 물질을 완전 연소시킨다. 씨디에스는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특허출원 없이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었다.
씨디에스는 2008년 인산가와 죽염용융로 계약을 체결하고 다음해 4월 죽염용융로를 납품했다. .
2016년 11월 인산가는 죽염용융로를 특허출원했다. 특허출원 내용은 씨디에스가 인산가에 제공한 도면과 거의 동일했다.
김찬미 변리사는 “당시 인산가에는 기계장치의 설계, 제작기술과 관련 인력이 없었다”면서 “인산가는 상장을 앞두고 무단으로 기술을 사용해 특허출원을 했다”고 주장했다.
씨디에스는 2018년 인산가를 상대로 무권리자 출원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8년여간 인산가와 소송을 통해 2심 특허법원 판결에서 전부 승소했다. 특허법원은 “인산가는 씨디에스글로벌에게 특허권이전 등록절차를 이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인산가는 대형로펌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판결은 3년째 계류 중이다.
소송하는 동안 씨디에스는 제품을 팔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씨디에스글로벌의 창업자이자 단독발명자인 김지원 회장은 별세했다. 김지원 회장의 딸인 김 변리사는 “수십년간 지켜온 중소기업 기술은 뺏겼고,회사는 문을 닫았으며 창업자는 억울함 속에 눈을 감았다”고 호소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중소기업들은 한결같이 가해기업의 강력한 처벌과 제도보완을 원했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거대 자본과 법무 조직을 상대로 스스로를 방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익법인 경청의 장태관 이사장은 “기술탈취 대기업은 패가망신은 아니어도 기둥뿌리 하나 흔들릴 정도 벌을 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는 “기술탈취한 대기업은 정부주관 국책사업참여 박탈과 공정위의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