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변덕에 끌려다닌 세계 지도자들
휴전에도 깊어진 불안
트럼프가 흔든 질서 여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휴전을 치켜세우고 있지만, 유럽과 세계 각국 지도자들 사이에는 안도보다 피로감과 불신이 더 짙다.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일시적 휴전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지난 6주 동안 각국은 트럼프의 오락가락한 전쟁 운영에 사실상 휘둘려 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전했다.
추가 공습을 할지, 전쟁을 접을지조차 예측하기 어려웠고, 그때마다 국제 유가와 가스값, 에너지 수급, 국내 정치가 함께 흔들렸다. 트럼프는 어떤 때는 테헤란에 추가 타격을 가할 듯 신호를 보내다가도, 또 어떤 때는 적대 행위 종식을 선언할 것처럼 행동했다. 동맹들로부터 충분한 지원과 감사표시를 받지 못했다는 그의 불만, 나토 탈퇴 가능성을 흘리는 식의 압박까지 겹치면서 각국의 불안은 더 커졌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번 2주 휴전이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고 본다. 이란 핵 문제도 그대로이고,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도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세계 경제와 안보 질서에 이미 깊은 상처를 냈다. 유럽 국가들이 이를 절감한 것도 분명하다. 트럼프 2기 백악관 아래에서 우방이든 적국이든 모두 미국 대통령의 기분과 계산에 따라 휘둘리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덴마크 외무장관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이 “오늘은 어제보다 낫지만, 40일 전보다 낫다고 보긴 어렵다”고 한 말은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휴전 자체는 반갑지만, 세계를 더 위험한 자리로 몰아넣은 뒤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휴전을 반기면서도 트럼프의 전쟁 수행 방식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세상에 불을 질러 놓고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고 박수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산체스 총리는 다른 유럽 지도자들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 보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구상 또한 실행은 미지수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에 군사 자산을 보내 이란의 해협 봉쇄를 완화하고, 치솟은 국제 유가와 가스값을 끌어내리는 데 협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럽으로서는 뚜렷한 대응 카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해협 안정 문제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 셈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도 조속한 종전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고, 뉴질랜드 역시 지속 가능한 휴전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유럽 각국은 이미 유류세 인하, 에너지세 감면, 주유소 가격 인상 제한 같은 비상 대책을 내놨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 올해 유럽연합의 일반 가구 에너지 비용이 거의 2000유로 늘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해협이 다시 열려도 손상된 에너지 인프라가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전쟁은 멈춘 듯 보여도 후폭풍은 오래 간다는 뜻이다.
더 답답한 대목은 트럼프를 다룰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이란 문명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고 위협했을 때도 독일 총리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누구도 이에 공개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외교적 수사로 포장됐지만, 본심은 명확하다. 괜히 맞섰다가 트럼프를 더 자극할 수 있으니 입을 다문 것이다. 물밑 중재가 이어지는 동안 유럽 지도자들은 침묵으로 버텼고, 그 사이 자국 경제 충격을 줄이는 데 매달렸다. 휴전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얻은 결론은 하나다. 전쟁은 멈췄어도, 트럼프가 흔든 질서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