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예비비 차단’ 법 만들어놓고 외면하는 여당

2026-04-09 13:00:33 게재

‘세부내역 공개 의무화’ 국가재정법 개정 주도

예비비 5조원 증액 추경, 산출근거 등 제시 안돼

정부가 제출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5조원 규모의 ‘예비비’ 증액분이다. 이는 코로나19 위기를 겪었던 2021년 증액 규모보다 높은 역대 최대 규모지만 세부적인 산출 근거와 집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예비비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까지 주도했으나 정작 이번 추경에서 자신들이 비판했던 ‘깜깜이 예비비’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제출한 이번 추경안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예비비를 2026년 본예산 4조원보다 많은 5조원(125%) 증액한 총 9조원으로 편성했다. 2018년 이후 추경에서 예비비 증액 규모가 통상 1조원대였고, 4차례 추경을 진행했던 2020년에도 2조3600억원밖에 늘지 않았던 데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증액이다.

이번 추경에서 예비비 증액분 5조원은 전액 특정 목적에만 사용하도록 제한된 ‘목적예비비’로 편성됐다. 이에 따라 목적예비비 총액이 8조2000억원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코로나19 대응이 정점이었던 지난 2021년의 목적예비비 8조1000억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는 증액된 5조원의 목적예비비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보상’을 위한 재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 상황을 고려할 때 정책적 필요성은 인정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해당 예산을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부의 세출사업으로 편성하지 않고 전부 목적예비비로 책정했다.

이와 관련해 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검토보고서는 “사전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기초 소요액은 산업통상부의 세출사업 예산으로 편성하고, 대외 변수에 의한 불가피한 초과 변동분 등 추가적인 재정 소요에 한정해 제한적인 수준의 목적예비비로 대처하는 것이 예산 원칙에 보다 부합할 것”이라면서 “5조원이라는 대규모의 예산을 세부적 산출 근거 및 구체적인 지출 계획의 제시 없이 예비비 형태로 전액 편성할 경우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예산처는 이번 추경안에서 예산총칙을 수정해 목적예비비 지출 가능 사유에 ‘국제정세 변동에 따른 고유가 및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한 지출’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규정상 근거는 마련했지만 용처별 구체적인 예산액을 구분하지 않아 5조원 중 고유가 대응과 공급망 위기 대응에 각각 얼마가 쓰이는지, 혹은 그 외 다른 사유가 포함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당시 예비비의 불투명한 집행을 막기 위해 집행 세부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을 주도한 바 있다. 이 법은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정작 법 개정 이후 처음 맞이하는 대규모 추경 심사에서 정부 여당은 자신들이 주도했던 법 취지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예비심사검토보고서는 “우리 위원회는 당해 연도 예비비 집행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기별로 그 사용계획명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했다”면서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이러한 국가재정법의 개정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안의 심사에 필요한 자료인 2026년 1분기 예비비 배정 금액, 배정 사유, 집행 상세 내역 및 사용계획서 등을 제출하지 않는 문제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일 뿐 그 집행에 있어서 기밀성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따라서 예비비는 예산안 편성·심의 과정이 아닌 집행과정에서 그 내역 공개에 대하여 일반 예산과 다르게 특례를 둘 사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획예산처는 개정된 국가재정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2026년 3월 말까지의 예비비 배정 및 집행, 사용계획에 관한 세부 내역을 조속히 제출해 이를 바탕으로 예비비 증액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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