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제약·바이오 공시 전면 수술
삼천당 사태 계기, 상반기 가이드라인
어려운 용어 대신 ‘스토리’ 방식 도입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업계의 공시 관련 논란이 반복돼 온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최근 코스닥 시총 1위까지 올랐던 삼천당제약이 불투명한 공시와 ‘계약 부풀리기’ 논란으로 한 달 새 주가가 40% 급락하는 등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면서 당국이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에 나선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학계, 유관기관, 금융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을 위한 TF’를 출범하고 첫 회의를 가졌다고 13일 밝혔다. 금감원은 단순히 공시 항목을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 ‘어려운 공시를 이해 가능한 공시로’ 바꾸겠다는 목표하에 구조 자체를 개편할 계획이다.
이번 제도 개선의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상장 단계(IPO)에서부터 ‘가정은 빼고 근거는 더하는’ 원칙을 적용한다. 공모가 산정 시 쓰이는 미래 수익 추정치의 근거를 명확히 밝히고, 변수 발생 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상세히 설명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상장 이후 공시 체계 역시 ‘단순 나열 대신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설계된다. 그간 임상 단계만 단편적으로 적시했던 관행을 깨고 파이프라인의 현재 위치와 리스크, 향후 계획 등을 투자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조화한다. 아울러 보도자료와 공식 공시의 수치가 달라 발생하는 혼란을 막기 위해 뉴스 기사나 홈페이지 공지 등 ‘공식 서류 밖에서 알려지는 정보(공외 정보)’의 정합성을 강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러한 전격적인 조치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최근 발생한 삼천당제약 사태다. 삼천당제약은 유럽 계약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5조3000억원’의 추정 매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실제 공시된 확정 금액은 그 100분의 1 수준인 ‘508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31일, 삼천당제약이 실적 전망치를 공식 공시 없이 보도자료로만 노출한 행위를 적발하고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보도자료로 호재를 흘려 주가를 부양하면서도 법적 책임이 따르는 공정공시 의무는 이행하지 않는 편법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삼천당제약이 2019년 사업 전환 이후 4년간 23차례나 ‘미확정’ 공시를 반복하며 시장의 피로감을 키워온 해묵은 관행 역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뒷받침해주는 대표 사례로 지적된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중 6개가 제약·바이오 분야 기업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미래 연구개발 성과에 기업 가치가 의존하는 특성상 투자 판단의 불확실성이 높다.
이형재 기자 hj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