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호르무즈 봉쇄’ 선언에 세계시장 패닉
국제유가 100달러 재돌파 전쟁보다 무서운 에너지 충격
미국이 이란 항구를 겨냥한 해상 봉쇄에 돌입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국제유가가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주말 동안 진행된 미·이란 평화회담이 결렬된 직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해군을 앞세운 초강경 압박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은 다시 ‘중동 전면위기’ 모드로 급속히 전환됐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미국산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선물은 미 동부시간 오후 6시13분 기준 배럴당 104.20달러까지 치솟으며 약 8% 급등했다.
국제 기준유인 브렌트유 6월물도 101.86달러로 7% 상승했다. 미국의 봉쇄 조치가 단순한 외교 압박을 넘어 실제 공급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에 시장이 즉각 반응한 것이다.
미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월요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3일 밤 11시)부터 이란 항구와 연안 지역을 드나드는 모든 해상 교통을 봉쇄한다”고 밝혔다.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있는 모든 이란 항만이 대상이며 국적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이란이 아닌 다른 국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의 항행은 차단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종전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직후 나왔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며 협상 결렬 책임을 테헤란에 돌렸다. 그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근본적 의지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이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반발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미국 대표단이 협상장에서 이란 측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테헤란은 휴전 기간에도 해협 통과 여부는 이란의 승인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고지도자 측근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는 국영 프레스TV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열쇠는 여전히 이슬람공화국의 손에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군사 옵션도 시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제한적 공격 재개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상봉쇄가 경제 압박이라면 제한 공습은 군사 압박까지 병행하는 복합 전략인 셈이다.
문제는 이번 충격이 단기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유 가격 급등은 곧바로 항공유, 해상운임, 화학제품, 전기료, 소비자 물가 전반으로 번진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에는 생산비 증가와 수출 둔화라는 이중 압박이 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재점화와 성장 둔화라는 최악의 조합에 직면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