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줄 봉쇄’로 이란 압박 극대화
중국 은행까지 겨눈
2차 제재 카드 꺼내
11개국 재무장관
“휴전 이행” 촉구
같은 날 영국·일본·호주 등 11개국 재무장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휴전의 전면 이행과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 회복을 촉구했다. 군사적 휴전과 별개로 세계 경제가 이미 상당한 충격을 받은 만큼 금융·에너지 안정이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일반 면허를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란산 원유에 대한 한시적 제재 완화 조치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일반 면허는 제재 대상국의 원유를 일정 기간 거래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는 장치다. 미국은 최근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인도 등 일부 국가의 수급 안정을 위해 이를 일시 허용했지만 이제 다시 봉쇄 기조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베센트 장관은 특히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90% 이상을 구매해 왔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제재 강화는 중국의 구매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은행 두 곳이 재무부의 경고 서한을 받았다며 이란 자금이 해당 계좌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입증되면 2차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차 제재는 미국 제재 대상국과 거래한 제3국 기업·금융기관까지 제재하는 방식이다. 직접 제재보다 파급력이 크다. 달러 결제망 접근 제한, 미국 금융시장 거래 차단 등 실질적 타격이 가능해 글로벌 은행들에는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통한다. 미국이 중국 금융기관을 상대로 이를 꺼내 든 것은 단순한 대이란 제재를 넘어 미·중 경제 패권 경쟁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된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같은 날 이란 최고권력층과 연결된 석유 네트워크에도 대규모 제재를 단행했다. 제재 대상에는 알리 샴카니 전 이란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의 아들 모하마드 후세인 샴카니와 관련 개인·기업·선박들이 포함됐다. OFAC은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최대 압박 재개 이후 단일 조치로는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의 계산은 분명하다. 군사 공격만으로는 이란의 전략적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면 석유 판매 수익과 해외 금융망을 동시에 끊어 체제 운영 비용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이란이 걸프 지역 국가들을 공격한 이후 중동 금융권의 협조 의지가 커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베센트 장관도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자국 은행 시스템 내 자금 흐름을 더욱 투명하게 들여다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제재 강화만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영국, 일본, 호주,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 노르웨이, 아일랜드, 폴란드, 뉴질랜드 등 11개국 재무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최근 몇 주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했다”며 휴전의 완전한 이행과 지속 가능한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 회복이 경제 성장과 에너지 가격 안정, 생활비 부담 완화에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추가 충돌이나 분쟁 장기화는 세계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금융 안정성에 중대한 위험이 된다고 경고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압력, 시장 불안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국제에너지기구(IEA)에도 공동 평가와 긴급 지원 체계 마련을 주문했다. 특히 취약국들은 유가 급등과 물류 차질에 더 큰 타격을 받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