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제안 거절 뒤 유사 사업’ OB맥주 수사
하청 통해 구독 모델 실행 의혹 … 영업비밀 침해 여부 판단 쟁점
중소기업이 제안한 사업 모델과 유사한 사업이 하청업체를 통해 진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OB맥주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제안서 내용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벤 베르하르트(한국 이름 배하준) OB맥주 대표를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대표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경찰은 고소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생맥주 케이터링 업체 A사는 “자사가 제안한 사업 모델이 이후 사업에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올해 초 고소장을 제출했다. A사는 2018년부터 OB맥주측에 생맥주 케이터링과 가정·기업용 렌털을 결합한 구독형 사업 모델을 제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안서에는 월 구독 수익 구조와 전국 확장 전략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사측은 제안서 제출 당시 보안 유지를 전제로 했으며, 해당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준비한 사업 아이디어를 OB맥주측에 전달했으나 해당 내용이 동의 없이 사업에 활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로 인해 상당한 금전적 손실과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또 “현재 해당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징벌적 배상을 통해 피해 회복을 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논란은 OB맥주 협력업체 키노콘이 2024년 4월부터 케이터링과 기업 렌털 사업을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키노콘은 OB맥주 제품 유통과 판촉을 담당해온 협력업체로 알려졌다.
A사측은 해당 사업이 자신들이 제안한 모델과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실제 사업 내용과 제안서 간 구체적 유사성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OB맥주측은 이와 관련해 “고소인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회사도 법적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기업 간 협력 과정에서 아이디어와 영업비밀이 어디까지 보호되는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은 비공개성·경제적 가치·비밀관리성을 충족할 경우 영업비밀로 인정한다. 다만 사업 모델이나 수익 구조와 같은 아이디어는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판단이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한 사업 구상은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실행 구조와 수익 모델 등 구체성이 인정될 경우 영업비밀로 판단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제안서 내용이 어느 수준까지 구체화됐는지가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청업체를 통한 사업 추진 방식도 쟁점으로 꼽힌다. 원청이 직접 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협력업체를 통해 유사 사업이 진행된 구조가 법적 책임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소기업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대기업이 이를 검토한 뒤 자체적으로 추진하거나 협력업체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례별로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 일반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협력 제안 과정에서 아이디어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지 않거나 체결하더라도 실효성이 낮은 경우가 많고, 중소기업은 거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이를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디어 자체를 법으로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제안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제도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안서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거나 일정 기간 유사 사업 추진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유사 논란은 유통업계와 정보기술 산업 등에서도 이어져 왔다. 자체브랜드(PB) 상품이나 플랫폼 사업 과정에서 외부 아이디어 활용을 둘러싼 분쟁이 반복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