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도입되면 시장이 바뀐다

2026-04-22 13:00:01 게재

‘증권 한정’ 넘어 전면 확대 … 기업 책임 범위 재편, 소비자 권리 구조 변화

집단소송 도입 논의는 반복된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도 실질적 구제가 제한됐던 기존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기업 책임 범위와 비용 구조, 소비자 권리 행사 방식까지 동시에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국회와 정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집단소송법 도입 논의가 공청회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이 단순한 소송 절차를 넘어 기업의 책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제도라고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집단소송은 증권 분야에 한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도가 전면 확대될 경우 개인정보 유출, 플랫폼 거래, 금융상품 피해 등 다양한 영역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집단소송의 핵심은 ‘효력의 확장’이다. 일부 피해자가 승소하면 판결 효력이 전체 피해자에게 미치는 구조로 바뀐다. 기존처럼 소송 참여자에 한정됐던 배상 범위가 전체 피해자로 확대되면서 책임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권리 구제 방식을 넘어 기업의 가격 정책, 위험 관리 방식, 서비스 구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전반의 규칙을 바꾸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업 책임 구조 재편 = 기업이 부담해야 할 책임 범위는 구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 분쟁 중심에서 집단 책임 구조로 전환되면서 법적 리스크 관리 방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기존 제도의 한계에서 예고돼 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수천명의 사망자와 피해자를 낳았지만 구제는 개별 소송 중심으로 진행됐다. 피해자들은 장기간 소송을 이어가야 했고 일부는 비용 부담으로 권리 구제를 포기했다.

BMW 차량 화재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리콜이 이뤄졌지만 피해 보상은 개별 소송에 의존하면서 동일한 피해에도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가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의 경우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을 통해 대규모 배상이 이뤄졌지만 국내에서는 개별 소송 중심 대응으로 배상 규모와 속도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 역시 유사한 구조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에 따르면 대규모 유출 사건에서도 소송 참여자는 일부에 그치고 실제 배상 범위는 제한적인 경우가 반복됐다.

이처럼 집단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 범위가 제한되는 구조는 기업의 사후 대응 중심 체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결국 집단소송 도입은 기업의 비용 구조와 의사결정 방식 자체를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후 대응보다 사전 관리가 강화되고, 개인정보 보호나 제품 안전 등에 대한 투자 확대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기업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재계는 소송 증가에 따른 비용이 제품 가격이나 서비스 비용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 등은 이러한 논리가 기업 책임 확대를 제한하는 근거로 반복돼 왔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의원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제정연대 회원들이 1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2의 쿠팡 사태,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참사 막아내자”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소비자 권리 구조 변화 = 소비자측에서는 권리 행사 방식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소송 비용과 시간 부담, 입증 책임으로 인해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소송 효과를 공유할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집단소송제는 소액 다수 피해 사건에서 실효적인 권리구제 수단”이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집단소송법은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핵심 제도”라며 “현재 구조로는 실질적 피해 구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소액 다수 피해 영역에서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별 피해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집단으로 묶이면 소송 실익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피해 구제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소송 증가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일부에서는 제도 악용 가능성을 지적하며 남소 방지 장치 필요성을 제기한다.

◆시장·법률 환경 변화 = 집단소송 도입은 법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소송 대응 체계가 확대되고 관련 보험과 분쟁 해결 서비스 수요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 확산으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피해 발생 시 영향 범위가 확대되면서 집단소송의 파급력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집단소송법은 단순한 분쟁 해결 수단을 넘어 시장의 책임 구조를 재편하는 제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과 소비자 간 힘의 균형이 어떻게 재조정될지에 따라 시장 구조 역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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