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유가 충격에 전시형 재정 대응 검토

2026-04-24 13:00:01 게재

“155억달러 추가차입 여력있어”

부채한도 안올리고 ‘실탄’ 확보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불안과 경기 둔화 압박이 커지자 태국 정부가 사실상 ‘전시형 재정 대응’에 나섰다. 태국 재무부는 22일(현지시간) 올해 10월까지 공공부채 상한을 높이지 않고도 최대 5000억바트(약 155억5000만달러)를 추가로 빌릴 수 있다고 밝혔다. 고유가와 소비 위축, 수출 둔화가 겹치는 상황에서 재정 여력을 앞세워 경기 방어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에크니티 니티탄프라팟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공공부채를 GDP 대비 70%로 제한한 현행 기준을 유지한 채 추가 차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지난 15일에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춘계회의가 열린 워싱턴에서 부채한도 상향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재원이 어디에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정부가 염두에 둔 재정 투입처는 비교적 분명하다. 에크니티 장관은 취약계층 지원과 성장 보강, 나아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재생에너지 투자, 노동자 재교육 같은 구조 전환 대책에 자금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돈을 빌리지 않으면 GDP가 줄어 경제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해, 단기 경기 방어와 중장기 체질 개선을 동시에 노리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중동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불안이 있다. IMF는 지난 16일 아시아가 중동산 석유·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아 전쟁발 에너지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아시아 경제가 올해 4.4%, 2027년 4.2%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이 길어질 경우 성장률이 누적으로 1~2%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태국은 그 충격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로이터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1.4%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외국인 자금도 이탈하고 있다. 실제로 3월 한 달 동안 태국 채권시장에서 7억800만달러가량이 빠져나갔는데, 이는 중동발 인플레이션 우려와 유가 상승이 아시아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을 키운 결과로 해석된다. 관광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내수와 투자 심리가 흔들릴 경우 성장세 방어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태국의 추가 차입 방침은 단순한 재정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금리와 물가, 소비와 투자 모두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으로 충격을 흡수하겠다는 선언이라서다.

다만 부채비율이 이미 상한선에 근접한 만큼, 시장에서는 향후 실제 차입 규모와 집행 속도, 재정 투입이 성장 회복으로 이어질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재정을 풀면 경기 하방을 막을 수 있지만, 반대로 물가와 국가채무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은 태국 정부가 안고 있는 분명한 딜레마다. 중동 전쟁의 불똥이 동남아 국가의 재정정책까지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태국의 이번 대응은 아세안 경제권이 맞닥뜨린 새 위험의 단면으로도 읽힌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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