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장기화’ 글로벌 석유기업 시총 25% 이상 뛰었다
미국 에너지기업 독주 두드러져 … 구조개선·고유가 효과로 시장 주도
호르무즈 리스크로 UAE 국영기업 시총은 하락 … 전쟁중 희비 엇갈려
중동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석유·가스기업의 시가총액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에너지기업들의 강세와 일부 중동 국영기업의 부진이 대조되며 ‘탈 동조화 현상’이 뚜렷하다.
시가총액 조사 사이트 ‘컴퍼니즈마켓캡닷컴’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가스분야 시총 상위 20개 기업의 2025년말 종가 대비 27일 시총은 평균 27.5% 증가했다. 상위 30위 기업까지 늘리면 평균 증가율은 25.5%다.
◆상위 30개사 중 미국기업이 15개사 = 주목할 부분은 미국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총 상위 20위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은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서던컴퍼니 듀크에너지 윌리엄스 슐럼버거 EPD 등 다수 포진해 있으며, 이들 대부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엑손모빌(21.9%) 셰브론(22.1%) 코노코필립스(29.8%) 슐럼버거(49.3%) 등은 시장 상승을 견인한 대표적 사례다.
상위 21~30위 기업 중에서는 7개사가 미국기업일 정도로 존재감이 더 뚜렷해졌다. 발레로에너지(38.4%) 베이커휴즈(53.1%) 마라톤페트롤리엄(32.6%) 등은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미국기업들의 강세는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이라는 외부 요인과 함께 구조적 경쟁력 강화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매출과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산업 특성상 에너지기업 전반이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저수익 자산을 정리하고 고수익 유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비용구조를 개선해왔다.
여기에 정제·화학을 아우르는 통합 사업구조까지 더해지며 수익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유가 상승과 구조적 경쟁력 강화가 맞물리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렸다.
◆아람코 ‘초저비용 생산 구조’로 1위 유지 = 반면 상위 30개사중 3개사는 시총이 감소했다. 중국 시노펙(-5.5%)과 UAE의 타카(-32.9%) ADNOC(-9.9%) 등이다. 이는 동일 업종 내에서도 기업별 전략과 시장환경에 따라 성과가 크게 갈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UAE의 국영에너지기업인 타카와 ADNOC는 중동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이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주요인으로 풀이된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발생한 생산·수출 차질 우려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평가다.
또 국영기업 특성상 가격정책과 투자결정이 시장논리보다 정책에 좌우되는 구조 역시 주가상승을 제안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다만 같은 중동 기업이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는 예외적인 흐름을 보였다. UAE의 타카·ADNOC와 달리 아람코는 약 14.5% 상승하며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지켰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아람코의 ‘초저비용 생산 구조’다. 로이터는 2023년 기준 아람코의 원유 생산비는 배럴당 3.19달러라고 보도했다.
또 헤이건 에너지컨설팅은 “사우디 국영기업의 원유생산 평균 손익분기점 가격은 배럴당 배럴당 10~15달러여서 미국·유럽 메이저 기업들의 35~60달러보다 크게 저렴하다”고 밝혔다.
아람코는 세계 최대 유전과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있으며, 인프라가 완비돼 추가 투자 부담이 낮은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러한 비용 격차는 유가 상승기에 ‘이익 레버리지’의 차이로 직결된다. 예를 들어 국제유가가 상승할 경우 아람코는 대부분의 가격 상승분이 이익으로 반영되는 구조인 반면 고비용 구조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수익 증가에 그친다.
업계에서는 “아람코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대비 최소 5배 이상의 비용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중동전쟁이 향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동 불확실성으로 글로벌시장 변동성 지속 = 이와 함께 시총 상위 30개사 중 가장 큰 폭의 증가를 기록한 기업은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로, 80.7% 상승률을 기록했다. 노르웨이의 에퀴노르도 63.7% 급등했다.
이들 기업은 심해 유전 등 고수익 자산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확대해 왔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 단가를 바탕으로 유가 상승기에 수익이 크게 확대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페트로브라스는 프리솔트 유전 개발 확대를 통해 생산능력과 효율성을 끌어올렸으며, 재무성과와 매력적인 밸류에이션이 시장의 관심을 이끌었다.
에퀴노르는 안정적인 북해 유전생산과 함께 에너지 전환 투자까지 병행하며 투자 매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시총 추이를 보면 유가 상승뿐 아니라 기업별 비용 구조와 지정학적 리스크 노출 수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에너지시장의 변동성은 이어지겠지만 저비용 구조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 격차는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