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새겨진 기후변화…가뭄 심할수록 아이들은 아팠다
고대에도 기후적응 전략 구사해
폭염 치매 사망위험 높아지면서
자연기반 그린인프라 관심 상승
기후변화가 우리 인간의 수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최근 고대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에 살던 인간의 건강과 강수량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비가 적게 내릴 수록 아이들이 더 많이 아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지구적으로 기온이 상승한 ‘중세 기후 이상(MCA)’ 시기에 안데스 지역에서는 수백년에 걸친 극심한 가뭄이 나타났다. 당시 온난화 수준은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와 비슷한 정도로 그때 인류의 경험은 기후와 건강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의 논문 ‘고대 안데스 산맥의 5000년에 걸친 강수 변동성, 출산율 및 대사 스트레스: 생물고고학적 경로 분석’에 따르면, 강수량이 줄어들수록 어린 시절 영양 부족 흔적이 유골에 더 많이 남았다. 가뭄이 심한 지역일수록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cribra orbitalia)’ 빈도가 높았고 출산율은 낮아졌다.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는 눈 주변 뼈 천장에 구멍이 뚫리는 증상이다. 어린 시절 영양 부족이나 감염 등 대사 스트레스를 겪었을 때 남는 흔적이다. 고고학에서 과거 집단의 건강상태를 읽는 대표적인 지표다. 어린 시절에만 형성되기 때문에 당시 환경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알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인간의 반응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안데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는 잉카 제국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직전인 ‘후기 중간기(LIP·Late Intermediate Period)’다. 서기 약 1000~1400년인 LIP는 중세 기후 이상 현상으로 알려진 전지구적 기후 변동과 일치하며 홀로세에서 지역적 온난화가 지난 10년 동안의 온난화와 유사한 몇 안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UC데이비스·UC산타크루즈 공동 연구팀은 이 시기를 포함한 약 5000년치 기록을 통해 기후와 인간 건강의 관계를 추적했다. 남미 안데스 남중부 지역 71개 유골 집합체에서 5205명의 사망 연령 자료와 4234명의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 유무를 수집했다. 시간 범위는 5000 B.P.(현재 기준 이전)부터 350 B.P.까지로, 고고학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기준인 1950년을 ‘현재’로 삼아 계산하면 기원전 약 3000년부터 기원후 약 1600년에 해당한다. 여기에 고기후 시뮬레이션 데이터(TraCE-21k)를 결합해 각 유골 집합체가 묻힌 시기의 강수량을 복원했다.
그 결과 강수량이 많은 시기·지역일수록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 빈도가 낮았고 출산율도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가뭄이 심할수록 병변이 많고 출산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논문에서는 “강수량이 감소할수록 농업생산성이 저하되고 어린 시절 영양결핍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사항들이 유골에 흔적으로 남겨졌다”고 해석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흔히 강수량 변동성이 심할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지만 통계적으로는 그 영향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문에서는 “고대 안데스 집단이 불규칙한 강수를 나름의 방식으로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지대 샘물 △안개 농업(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안개가 육지로 들어오면서 수분을 머금은 초지나 농경지가 형성되는 현상) △수리시설 등 다양한 물 확보 전략이 변동성의 충격을 완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적응을 잘해서 피해가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도 영향도 생각과는 달랐다. 높은 고도에 살수록 크리브라 오르비탈리아가 오히려 적게 나타났다. 논문에서는 “고지대일수록 경작 가능한 땅이 상대적으로 넓고(해발 2500m까지), 해안 저지대에 많은 기생충 감염이 적었던 영향”으로 분석했다.
물론 이 연구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 어린 유골은 성인보다 보존이 잘되지 않아 과소 집계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 데이터의 공간 해상도(위도 2.5°×경도 2.5°)도 안데스의 복잡한 지형을 세밀하게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논문에서도 “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고 관계의 방향과 크기에 집중해달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은 다시금 확인됐다. 환경이 악화될수록 인류의 건강도 나빠졌고, 다행히 적응의 정도에 따라 그 영향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경고는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대 의학도 비슷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폭염이 치매 발병을 높이고 이는 밤과 낮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온다.
실제로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 앤 디멘시아(Alzheimer’s & Dementia)’의 논문 ‘극단적 열 노출이 치매 발병과 전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일본 대규모 인구 기반 코호트 3년 추적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 열에 노출된 경우 치매 발병과 사망 위험이 높아졌다. 또한 그 영향은 노출 후 1~3년 이내에 빠르게 나타났다. 이는 일본 도쿄공대·지바대 공동 연구팀이 65세 이상 어른 5만7178명을 3년간 추적한 결과다.
미국의사협회 저널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게재된 중국 복단대·중국CDC 공동 연구(논문 ‘중국에서의 열 노출과 치매 관련 사망률’)에서도 주간뿐만 아니라 야간 폭염이 치매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낮의 더위만이 아니라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이 논문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치매를 앓는 고령자의 경우 더위를 스스로 인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인근 주거환경 기반 시설 자체를 기후적응형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가뭄이나 폭염 등 다양한 이상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과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안을 고안해 내고 있다. 고대 안데스인들이 샘물·안개 농업·수리시설로 가뭄 충격을 완충했듯 오늘날에는 이른바 ‘그린인프라(녹지·수공간을 활용해 빗물 관리·열섬 완화 등의 효과를 만드는 자연 친화적 기반시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도시 숲과 습지, 빗물 정원 등 자연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지혜는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