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역봉쇄 후 이란 원유저장 한계 임박…‘시간싸움’
블룸버그 “이란, 고유가 겪는 미국보다 오래 버틸지 관건”
전문가들 “이란 탱크 탑까지 도달되려면 약 1개월 여유”
미 재무장관 “이란 원유저장시설 곧 포화 … 유정 폐쇄 임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종전 협상안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도 다시 긴장국면에 들어섰다.
이란은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대이란 해상봉쇄) 이후 감산과 해상 저장 확대 등 ‘버티기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저장한계가 임박하면서 결국 ‘시간’이 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단순 감산 아닌 정밀 감산 시작 = 블룸버그는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이란의 석유 수출이 급감하고, 저장시절이 빠르게 포화상태에 접근했다”며 “이에 생산감축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해상봉쇄 후 이란의 원유 수출은 최근 몇 주 사이 급격히 감소했다. 기존에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을 활용해 중국 등으로 우회 수출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물리적 봉쇄로 인해 수천만 배럴의 원유가 해상에 묶인 상태다. 그림자 선단이란 국제 재재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유조선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특히 주요 수출거점인 카르그섬 인근에는 노후 유조선들이 집결하며 사실상 ‘부유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 약 3500만배럴 이상의 원유가 해상에 적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너지 운송 추적·데이터 분석업체 보르텍사에 따르면 이란은 총 6500만~7500만배럴의 해상저장용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 부분을 걸프만에서 운항하는 이른바 ‘다크 탱커’에 묶여 있다.
이에 이란은 저장시설이 포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생산을 줄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단순 감산’이 아니라 과거 제재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밀 감산’이다.
블룸버그는 “이란은 과거 제재와 생산중단 경험을 바탕으로 유정 손상없이 생산을 멈추고, 빠르게 재개하는 기술을 보유했다”며 “다만 이란도 현재 전략이 영구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따라서 미국이 겪는 고유가 등 경제적 고통보다 이란이 더 오래 버틸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전쟁 끝나면 유가 훨씬 낮아질 것” 자신 = 호세이니 이란 석유·가스·석유화학제품 수출협회 대변인은 “우리는 충분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호언했다.
옵시디언 리스크 어드바이저의 매니징 총괄인 브렛 에릭슨도 “미국은 이란이 압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붕괴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이는 현실을 오해한 것”이라며 “이란 체제는 굴복하지 않고 적응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란은 2018년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테헤란의 원유생산 감축을 강요하는 제재를 가하면서 더 정교해졌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 볼때 미국의 제재는 이란의 생산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 못했고, 이후 몇년 동안 이란의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다만 시간의 변수가 누구에게 이점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이란 저장시설이 이른바 ‘탱크 탑(tank top)’ 상태에 도달하면 수출이 불가능한 만큼 생산을 강제로 줄여야 하고, 유전 가동률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려야할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감산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구조적 축소로 이어지며 위기가 심화될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의 이란 선박 봉쇄로 인해 이란의 원유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곧 유정을 폐쇄해야 할 상황이며, 다음 주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대 이란 전쟁이 끝나면 (미국내 유가가)올해 초나 2020년, 2025년의 어느 시점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봉쇄 장기화에 대비해 육상수출(터키 파키스탄)과 철도 수송(중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상수출을 대체하기엔 물량도 턱없이 부족하고, 실현가능성도 적다는 평가다.
◆에너지 의존도 94% 한국, 3단계 연쇄 충격 우려 = 중동전쟁 장기화는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큰(2024년말 93.6%) 우리나라에게는 연쇄적인 경제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에너지 시스템은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전력가격이 연동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충격이 시간차를 두고 확대된다.
현재는 1단계인 ‘고유가’ 상황이 진행 중이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원유 수입단가 상승이 곧바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과 물가를 끌어올리는 구조다.
약 3~4개월 뒤에는 LNG 가격 상승이 본격 반영되는 2단계 영향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한국의 LNG 장기계약 상당수는 유가 연동 방식(JCC 등)을 따르고 있어 이는 곧 발전 연료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력시장 전체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전력시장은 LNG 발전이 ‘한계발전원’ 역할을 하는 구조”라며 “즉 가장 비싼 LNG 발전 비용이 전력도매가격(SMP)을 최종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SMP가 상승하면 한국전력의 원가부담이 커지고, 결국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유가 상승은 에너지 수입액 증가와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무역수지 악화는 원화약세 압력을 키우고, 이는 다시 수입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입선 다변화 △전력구조 개선 △수요관리 및 효율 강화 △요금체계 개편 △신기술 개발 확대 등 복합적인 대응전략으로 에너지안보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