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반복된 신평사 ‘뒷북 평가’

2026-05-06 13:00:01 게재

투자자들 ‘구조적 문제’ 지적 … 금융당국 예의주시

하지만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달 16일 이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현금유보’(캐시트랩) 사실을 공시한 바 있다. 공시내용에 따르면 ‘벨기에 자산 담보대출약정서상 현금유보 이벤트가 발생했다. 평가금액 9억2000만유로 기준으로 LTV 52.5%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대출 원금을 4억8300만유로 이하로 낮춰야 하며 이를 위해 약 7830만유로를 상환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1개월 내 전단채 400억원, 공모사채 600억원, 환헤지 정산금 1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고 공시했다.

뒷북대응이라는 비판에 대해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우리는 상황과 이벤트 등 그때그때 발생사건에 맞춰서 제반 조건을 고려해 평가한다”며 “뒷북평가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과 같은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여러차례 제도 개선에 나선 바 있지만 신평사의 뒷북 평가 문제는 반복되고 있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후약방문’ 하향 조정 = 국내 신평사들의 뒷북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반복된 구조적 문제다. 기업의 펀더멘털 악화나 부실 징후를 선제적으로 경고하기보다는, 부도나 워크아웃 등 대형 악재가 터진 직후에야 급격히 등급을 내리면서 투자자들의 손실을 초래했다.

지난 2012년 웅진홀딩스와 2013년 동양그룹 계열사들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최고 수준 내지 투자 적격 등급을 유지했다. 그해 쌍용건설 역시 채권단 워크아웃을 신청한 당일에야 신평사들이 회사채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단숨에 9단계나 강등하며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

2016년에는 해운업 불황과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시장에 팽배했음에도, 한진해운이 구조조정을 개시하기 직전까지 ‘A-’라는 우량 등급을 부여했다.

2023년엔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들의 잇따른 기업 회생절차 신청이 발생했다. 대유플러스가 2022년 3월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기상환청구(285억원)에 대응하지 못해서다. 조기상환 청구액이 한 달 전에 확정됐지만 신평사들은 한 달간 경고음을 내지 않았고,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 다음 날에야 하루 만에 ‘D’ 등급으로 강등시켰다.

같은 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당시에도 신평사들은 신청 당일까지 ‘A-’ 등급을 유지하다가, 발표 직후 10단계나 아래인 ‘CCC’로 급강등시켰다.

2025년 3월 촉발된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사태 또한 신용평가사들의 전형적인 ‘뒷북 평가’ 사례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2월 28일 홈플러스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A3-는 투기등급 직전 단계로 통상 투자 가능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불과 나흘 뒤인 3월 4일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이후 신용등급은 ‘D’로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평상시에는 높은 등급을 유지하다가 시장이 이미 위험을 인식한 뒤 강등한다면 신용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의환 홈플러스 전자단기사채(ABSTB)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등급이 투기 직전까지 유지됐기 때문에 위험을 감지하기 어려웠다”며 “최소 몇 달 전부터 유동성 위험이나 등급 하락 가능성에 대한 신호가 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 28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 피해자문제 해결을 위한 이재명 대통령께 드리는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대통령실에 직접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금융당국 제재 나설까 = 현재 금융당국은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와 관련, 신평사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4일 “과거 동양사태 당시 신평사에 대한 검사를 벌여 중징계한 사례가 있다”며 “제이알글로벌리츠와 관련해서는 (검사 여부에 대해) 아직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평가를 늦췄는지, 기업의 정확한 평가 정보를 언제 전달받았는지, 또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진 평가가 적정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 영역으로 주관적 요소도 많다”며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과거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까지 신평사들이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신용등급 평가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검사 결과 평가시스템의 문제와 신용평가 업무 부실 등이 드러났다. 당시 3대 신평사는 모두 기관경고의 중징계를 받았고, 관련 임직원들도 문책경고와 감봉 등 제재를 받았다.

이의환 위원장은 “투자자들은 신용평가 결과를 신뢰하고 단기채에 투자한 측면이 크다”며 “평가 변화가 있었음에도 시장에 충분한 신호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이는 단순한 사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용평가 결과는 단기채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보”라며 “위험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적절한 경고 기능이 작동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광·장세풍·이경기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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