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일구는 사람들 ⑨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

“청력 잃어가는 아버지와 편하게 대화하려 개발”

2026-05-06 13:00:02 게재

시각·청각기술 융합한 헤드폰 ‘페리스티어’ … 스마트안경 한계 극복

10월 출시 예정, 북미시장 우선 목표 … 글로벌기업과 협력논의 본격

2026 CES ‘최고 혁신상’ 수상 … 포스트 스마트폰시대 대안으로 주목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강력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세계는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속되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사상 최대 수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수출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 성장은 혁신정신이 일궈 온 성과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왜 눈앞에 자막을 바로 보여주는 안경은 없을까.”

긱스로프트 창업의 출발점은 아버지와의 일상이었다.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는 2013년 삼성전자에서 영상·음향기기 개발과 신사업 발굴을 담당했다. 퇴근 후에는 청력을 점점 잃어가는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해 눈 가까이 문자를 주고받아야 했다. 불편은 질문이 됐고 질문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2019년 삼성전자 퇴사 후 첫 선택은 스마트안경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안경은 80g 이하의 무게 안에 광학렌즈와 배터리, 회로를 동시에 담기엔 구조적 한계가 뚜렷했다. 기존 안경 착용자에게는 또 다른 불편이 됐다. 2020년 실리콘밸리에서 도전한 첫 창업은 1년 만에 접었다.

실패로 방향을 바꿨다. 안경이 아니라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답은 오히려 가장 익숙한 기기인 헤드폰이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착용하는 헤드폰에 시각(디스플레이 카메라)과 청각(마이크)을 결합하면 새로운 사용자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스마트 헤드폰 ‘페리스피어’다. 페리스피어는 2026 CES 헤드폰·개인 오디오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괴짜들의 다락방’이라는 뜻을 가진 긱스로프트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가 경기 판교 본사에서 2026 CES 최고혁신상 수상과 긱스로프트 헤드폰 ‘페리스피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긱스로프트 제공

●왜 헤드폰이었나.

안경은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이지 않았다. 반면 헤드폰은 달랐다. 100년 넘게 일상에 자리 잡은 헤드폰은 가장 풍부한 청각경험을 제공하는 기기다. 광학모듈과 디스플레이 배터리를 담을 수 있고 사용자의 거부감도 적었다. 헤드폰에 디스플레이를 결합하면 단순한 오디오 기기가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 허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헤드폰을 다시 정의하자”는 생각에서 탄생한 게 페리스피어다. 페리스피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청각중심 기기로부터 출발해 시각경험까지 제공하는 기기다.

●CES 혁신상 기술의 핵심은

페리스피어 핵심은 ‘헤드폰 우선’이라는 발상이다. 기존 확장현실(XR) 기기들은 새로운 착용 습관을 강요했지만 페리스피어는 가장 익숙한 헤드폰에서 출발했다.

제품에는 Full HD 디스플레이와 스테레오 카메라, 마이크가 통합돼 있다. 평소에는 일반 헤드폰처럼 음악을 듣다가 필요할 때 회전형 디스플레이를 눈앞으로 내려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양안 카메라는 사용자의 시점을 그대로 3D 콘텐츠로 촬영할 수 있다. 촬영한 영상은 다시 페리스피어로 재생해 현장의 실재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실시간 공유를 통해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경험도 가능하다. 이처럼 ‘스마트 헤드폰’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제시한 점이 2026 CES 헤드폰·개인 오디오 부문 최고혁신상으로 이어졌다.

●이 기술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가.

많은 기업이 포스트 스마트폰시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 헤드셋이나 증강현실 안경은 여전히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기술부족이 아니라 사용성 문제라고 봤다. 특정 목적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기기는 대중화되기 어렵다. 사용자는 새로운 기기를 배우기보다 익숙한 것을 원한다. 페리스피어는 이 문제를 ‘익숙한 기기에서 출발한다’는 방식으로 풀었다. 음악을 듣고 통화하는 사용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만 시청각 확장기능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이 전화기라는 익숙한 기능에서 시작했듯 페리스피어는 헤드폰이라는 핵심 기능을 기반으로 한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장 큰 난관은 기술보다 구조였다. 헤드폰은 다양한 사용자 머리에 맞아야 하므로 유연성이 필요하다. 반면 디스플레이는 시청경험을 위해 강성을 유지해야 한다. 휘어야 하는 제품과 휘면 안 되는 부품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 여기에 누구나 봐도 ‘전형적인 헤드폰’처럼 보여야 한다는 조건까지 더해졌다. 익숙한 제품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4년 동안 10차례 이상 제품형상을 반복 개선했다.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었다. 그 과정이 지금의 완성도를 만들었다.

●혁신상 이후 달라진 점이l 있다면

2026 CES 최고혁신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방향성을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특히 Bose와 삼성전자가 수상했던 헤드폰·개인 오디오 부문에서 스타트업이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상징성이 컸다. 이후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논의가 본격화됐다. 특히 헬스케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긱스로프트와 페리스피어의 신뢰도와 인지도가 글로벌로 확대하는 전환점이 됐다.

●집중하는 시장과 향후 계획은

페리스피어는 10월에 출시 할 예정이다. 세계시장으로는 북미시장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웨어러블과 인공지능(AI)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이 큰 시장이다.국내에서는 다양한 기업들과의 협업모델을 논의하고 있다. 안마기 회사와 협업을 통해 안마를 하는동안 헤드폰을 착용하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공연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별도 영상을 제공하면서 공연과 스포츠 관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앞으로는 휴먼로봇과 연동되는 원격체험 플랫폼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성남=김창배 기자 goldw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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